하얀녹색의 기분.
양배추를 고른다고 치자. 양배추 중에 가장 싱싱한 것으로 조금 초록색이 섞인 것이 좋을까 아니면 두부처럼 흰색을 고를지 상당하게 고민이 되는데 이러다가 오늘 집에 못 갈지도 몰라. 어디서 들었는데 선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욕심이 많은 거라고 했던 거 같아. 이왕에 사는 거 더 괜찮은 양배추를 고르려 하는 게 타인이 보기에는 쓸데없는 일로 비출수도 있다는 게 모순적으로 생각되겠지만 논리에 딱 맞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지.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주관식이 아니라 객관식 문제지에서 답을 고를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에 더 근접한 것으로 보면 될까. 어떤 선택은 우리를 완벽하게 다른 세계로 데려다 놓기도 하기에. 그런데 난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시험 주관식 5문제를 찍어서 맞춘 적이 있었지. 그게 유일한 나의 신기였어... 그 이후로는 시험지마다 비가 내렸고 더도 덜도 아닌 딱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었더랬지.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만 운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잖아. 사실 그들도 엄청나게 열심히였을거야. 결국에는 시간싸움이라고들 하니까. 덕분에 눈만 내리는 시험지를 갖는 기분을 잘 알고 있지 그들은.
아무튼 우리가 양배추를 고르는 일에 있어서는 비나 눈이 내리지는 않을 거야. 덜 싱싱한 양배추라면 덜어내면 될 거고 양배추는 생각보다 농약을 많이 쳐서 썩은걸 고르는 게 더 힘들지 몰라. 그렇다고 매번 올가에 가서 양배추를 고를 수는 없는 일이잖아. 우리 집 근처에는 올가가 없고 채소는 있지 길가에서 알록달록한 걸 고르는 재미가 또 있어서 말이지.
다음 중에서 괜찮은 양배추를 고르시오.
1 흰색 양배추
2 녹색 양배추
3 하얀 녹색 양배추
4 투명 양배추
양배추는 찌면 왜 투명해질까. 그대는 생각보다 솔직한 친구야 속이 다 들여다보여. 어떤 이들은 너무 솔직한 건 오히려 별로라고 하는데 난 그래도 솔직한 게 좋아. 왜냐하면 내가 늘 거짓말을 하니까. 앞으로는 정직한 거짓말을 하는 걸로 당신과 친해지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