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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사람 Apr 08. 2021

포도마차.

안녕 없이 헤어지는 법.

모두들 복숭아 호텔에서 커다랗고 우아한 접시에 담겨있는 조식을 먹을 때에 또 푹신한 베개에서 늘어져라 온몸을 내맡기고 있을 때에도 나는 늘 포도 마차에 있었다. 비좁은 파란색의 동그란 의자에 앉아서.

​오뎅과 국물을 먹거나 떡볶이를 먹기도 했다. 지루하다고 생각되는 날에는 김밥과 소주를 주문하기도 했다. 시중에 있는 웬만한 약보다도 약빨이 좋은 소주를 안 먹는 사람들도 있다니. 우리는 언제나처럼 투명한 병에 담긴 맑은 액체를 그리워했다. 다이아를 녹이면 술이 되는 걸지도 모르잖아. 차갑지만 따뜻한 액체가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여전히 술을 탐닉하고 계속해서 미련이 남은 듯 뒤돌아봤다. 잔뜩 술에 취해서 취한 채로 독주를 팔면 안 되는 건가요.

오렌지색 천장에는 포도가 가득 열려있다. 색색의 포도는 주황색과 대비를 이뤄서 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곤 했다. 포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약간의 파라다이스 같은 느낌으로 치닫고 잘 익은 그것을 떼어먹을 때면 황홀감에 사로잡히곤 했었지. 밤이 지나고 나면 푸르스름한 새벽이 최선을 다해 오고야 말았다.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모두에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포도를 뜯어내서 밟고 짓이겼다. 포도주를 만들 것도 아니면서 아침이 오는 게 진짜 진짜 싫다는 말도 안 되지만 말이 되는 거짓말을 앞세워 매번 그렇게 했다 꼭 약속한 듯이. 그리고는 이별이 두렵지 않은 척 지구 상에서 가장 예의 없는 모습으로 인사를 하지 않고 헤어졌다.







기다리며 기다리지 않는 안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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