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맛 롤리팝.
이 책은 시집 정도의 두께로 가방에 넣어두고 간식을 먹듯 읽을 수 있는 뭔가 제니 쿠키 같은 책이다. 사실 제니 쿠키를 실제로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상상이 되는 맛인 그런 느낌. 본인의 글을 너무 좋아한다는 은모든 작가님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정말이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에도 있는 기능인 오프닝 건너뛰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50분짜리 드라마를 5분 만에 하이라이트만 본다고 하는데 옛날 사람인 나로서는 그렇게 대충 드라마를 시청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3분만 늦게 봐도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정주행 해야 하는 스타일인데 이래서 조금 많이 피곤한 타입인 건가. ㅎㅎ 어쨌든 작가님도 오프닝을 중요시하는 분일지도 모르겠다. 오프닝을 보면 그 작품의 이미지나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한 번은 봐줘야 하는 게 아닐까.
코로나19 덕분에 오프닝=결혼식 없이 신혼생활을 시작한 커플의 일상과 그 반대편 쪽에 있는 무성애자의 삶, 그리고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솔메이트에 대한 총 세 가지 스토리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 세계의 끄트머리에
발이라도 담가볼 걸 그랬다는
것이었다.
오프닝이 없는 시작과 오프닝 있는 처음의 차이는 얼마만큼 일지 그 간격은 넓을 수도 있고 좁을 수도 있다. 결혼은 그 사람의 모든 생이 걸어 들어오는 방이라고 했는데 전체가 오는 것이지 일부분만 취할 수 없다는 데에 그 핵심이 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일 테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어쩌면 조금은 많이 놀라거나 실망할 수도 있지만 상대도 똑같이 그렇게 느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주인공은 배우자의 과거까지 위로해주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답답해하는데 아마 그건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지극히 달라지고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과거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만큼 아름다운 일이 있을지 싶다.
요란하고 뜨거운 충돌의
반대편에 위치한 듯한 맛이었다.
무거운 것과 가벼움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은우의 세계와 파인애플이 든 보드카를 마시는 밤에 잠겨있는 시간들. 은우 스스로의 행복을 선택하는 지점들에는 타인과의 간격이 약간 더 벌어질 뿐인데 그런 건 어쩌면 아무래도 괜찮지 않을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고 바깥이 요란하고 뜨거울수록 은우는 차갑고 냉정할 만큼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스펑나무가 무너져 가는
돌벽을 전력을 다해 움켜쥐고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처음 떠난 여행지에서 만난 새롭지만 익숙한 인연으로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게 되는 이치를 우리는 배울지도 모른다. 무너져가는 벽을 지탱할 힘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비워내야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또 여행을 통해 체감하고 다시 실수를 앙코르 방송하며 체념하고 그렇게 우리에게 남은 페이지를 채워나간다. 흐릿하게 빛나는 기억들을 반복 재생하며 먼 곳에 있는 결말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