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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사람 Oct 17. 2021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정이현

웨하스 수레바퀴.

정이현 작가님의 눈동자를 통해 들여다보는 주가와 상관없이도 조용하게 폭락하는 가정과 폭주하는 사회의 모습은 작은 수족관 안에 들어가서 공활하고 광활한 바깥을 내다보는 것처럼 쓸쓸하고 애처로운 기분이 든다. 반투명한 슬픔이 우리를 방금 내린 눈처럼 감싸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자와 원자에 둘러싸여 숨을 쉬고는 있지만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없다는 느낌에 가만하게 빠져들고 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요즘 읽은 책들 대부분이 죽음에 대한 비중이 높은 이유는 삶과 죽음이 어쩌면 아니 당연하게 동일하기 때문일까. 죽음은 가볍게만 다룰 수 있는 소재는 아니지만 우리 곁에 생각보다 만연해 있는 것도 사실인지 싶다. 책은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에 대한 서사가 펼쳐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너무 무겁지는 않게 그리고 적당하게 가볍지도 않도록 글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이셨을지 문장들 곳곳에서 작가님의 노력이 느껴졌다.



그 비밀스러운 느낌은
느리고 진득한 체감을 동반한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에 대한 기준으로 타인을 판별하고 평가하는데 익숙하다. 반면에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진 그 거대한 속력의 흐름을 고의적으로 역행하거나 의도적으로 이미 놔버린 사람들은 느림에 대해 더 이상 불평하지 않는다. 천천히 서행하는 기차 속에서 바깥 풍경들은 더 잘 보이기 마련이니까. 그들은 서서히 흐르는 시간들과 함께 이루어지는 배경을 관찰하고 감상하는데 관대한 편이 되고 있었다.



닿지 않아서,
희미해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들이 있었다.



일정 부분에 다다르자 뇌리를 스치는 건 작가들은 비슷한 음계와 음률을 가진 악보를 공유하거나 개인 소장하고 있는 게 아닐지 그들만의 영역이 달의 한편에 있는 게 틀림없어. 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도 이처럼 가깝고도 밀접하며 닿아 보이지만 닿지 않아서 마음을 다해 펼쳐 보이고 드러내면 잔뜩 용기를 내어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책에서도 그렇듯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아이들을 피해자와 가해자로만 나눈다는 사실이 극명하지만 초자연적으로 느껴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당연하지만 신나고 즐거워야 하며 아이들의 일상은 성인들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가능할 정도로 순수하고 솔직하며 가식이나 꾸밈이 거의 없다. 아이의 감정선이 우리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예민함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쉽게 상처 받기 쉬우며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로 상황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고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들이 더 이상 순박하지 않다면 그 모든 이유가 전부 어른들의 잘못이라는 것을 완벽하고 확실하게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정이현 작가님의 세심하고 정밀하게 지금에 내려앉은 빛의 스펙트럼을 통과한 현대적인 감각의 글을 바라보며 괴괴하고 괴상망측하지만 세속적이고 더러워진 피가 정화되는 기분이라 현실이 아니라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아서 잠을 설쳤다. 그리고는 작가의 말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와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아주 멀리 당도하는 꿈은  번도 꾸지 못했다. 맹목과 불안 사이를 서성이는 사람에 대해, 일상의 어떤 모습에 대해 쓰려했다는 것을 완성한 후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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