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행 야간열차.
절친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으로 스무 살 때 절친님과 같이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는 책의 낡은 냄새를 좋아했고 철학적인 제목에 도도하고 무력하게 빠져들었다. 그 시절에도 인텔리하고 감성적인 취향을 가진 절친이었기에 종종 책을 추천받기도 했는데 대부분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 실은 이 책은 흥미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 당시 나에게는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었는데 한 인터뷰에서 작가님의 의도 자체가 이 책을 빠르게 단숨에 읽지 않길 바란다고 하셨던 걸로 보아서는 천천히 읽는 게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내가 머리가 나쁜 것 같다. 흐흐.
정말 특이한 점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읽는 순간조차도 결코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로맨틱함과 동시에 에로스적이며 고혹적인 문장들은 읽을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전혀 알 수 없는 곳에서 희미하게 음영 처리된 물성이 새어 나왔다. 토마시와 테레사, 프란츠와 사비나의 변태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결코 옹호하지 않지만 글자와 대사들은 오묘하고 기이한 문양들과 금색과 무지개로 색칠을 한 고서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이상하리만치 유독 한 문장을 여러 번 읽게 된다.)
토마시에게 완벽하게 사로잡힌 테레사. 토마시가 없는 그녀의 삶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테레사를 보고 있는 동안에 그녀의 안위를 심히 걱정해야만 했다. 사랑이라는 말이 솔직함과 거리가 먼 누군가에게는 좀 심각하게 간지러운 단어이지만 감정이라는 달콤하며 씁쓸한 것들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어느 기저까지 침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인간 본성에 대한 자기기만적인 심리의 심연까지 먼발치에서 관찰해보는 하나의 기회가 되었다.
우리의 시계는 각자의 유속대로 흐르고 바람의 세기에 따라 변화하며 흐르는 강물에 자연스럽고 인위적으로 몸을 맡긴다. 허영심에 가득 차 있던 순간, 수치심에 잠식되었던 기억들, 의미 없는 슬픔들에 둘러싸인 시간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점을 이루고 그 점은 소실점이 되어 눈앞에서 소멸해간다. 소실점과 무한 원점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방랑하는 우리는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무언가를 잃어내거나 밀어내지 않고는 견디어 낼 수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짓을 저지르고 싶었다.
지나간 칠 년을 단번에
지워 버리고 싶었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극복할 수 없는 추락 욕구.
인간이 추락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일까. 극적이며 파괴적인 중력의 힘이 필연적인 시점에 스스로를 바닥으로 잡아당기는 능력을 부정하지 않으려는 습성은 가벼워지고 싶은 원초적인 욕구에 부흥하여 그들을 새로운 구원으로 이끌고 결국엔 목적이 없는 목적지로 영혼마저 유실되곤 한다.
책 속에서 사비나와 프란츠의 관계는 테레사와 토마시 사이에 놓인 관계와는 연속적이면서도 사뭇 이질적인 느낌이 있다. 사비나는 우주까지의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프란츠는 몽상가로 어느 정도 틀에 박혀 보이는 세계를 갈망하는 한편 보편적이지 않은 세계를 찾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하는 사람 같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만들어지는 차원은 기존의 이치를 부수고 쌓고 어지럽히며 제자리를 돌듯 공회전을 하면서 차분하게 정돈된 질서의 바깥을 향해 나아간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미래로 도망친다.
자신을 속여가며 타인을 위로할 수 있을까. 주인공들은 불확실한 믿음과 완벽성을 가진 거짓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절망적인 희망을 고독으로 포장한 채로 우리의 가난하고 비루한 심장을 비어있는 영혼을 가진 자에게 선물하기 위해 애를 쓴다. 상자 안에는 실제적으로 반짝이는 물질이 부재하고 찬란하게 고요하고 정밀한 이론을 발견하고자 모조품이 분명하지만 누구나 원하는 가짜를 채워 넣는 무의미하지만 진정성을 위한 상황이 계속된다.
달리 말하자면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 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공산주의에 대하여 비방하는 글을 썼던 토마시. 우릴 집어삼키는 커다란 체제에 대한 저항이란 본디 어렵고 험악한 일이지만 그 결과는 생각보다 비참하고 끔찍했다. 그래서 그들이 사유하는 현재는 비현실적이며 왜곡되어 있고 미래지향적이지 않으며 진취적인 과거를 빙그르르 돌고 돌아 앞서 나간다. 과거의 과거를 향한 채로 그 자리에 멈춰 박제되어 있는 그들의 모습을 데자뷔처럼 꼭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움켜쥐고 있는 현실을 미래로 미련 없이 보내주고 불확실한 미래를 과거로 데려올 수 있는 희극적인 능력을 최대치로 증폭시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침묵의 소용돌이에서 깊고 낮게 무너지는 결론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았다.
저주와 특권, 행운과 불운,
사람들은 이런 대립이
얼마나 서로 교체 가능한지를,
인간 존재에 있어서 양극단 간의 폭이
얼마나 좁은 지를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
테레사의 보헤미아는 급격하게 너무 많이 변했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또한 사비나는 저주할 정도로 공산주의에 대해 질색했고 결국엔 평생을 통틀어 움직임이 거의 없다가 어느 한 지점에 이르러서는 전력질주. 움직이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이동했고 전력을 다해 달렸지만 내내 자발적이지 않은 떠밀림이었다. 등장인물들은 절대적으로 가식적인 진리를 향한 의식적인 믿음을 숭배하며 심판을 기다리지 않는다.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자유의지를 비방하려는 자들이 그들을 가로막고 그들은 자유롭지만 속박되어 있고 구속당했지만 해방되었기에 어떤 것도 부정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리 만무했으나 그로 인해 더욱더 반항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때문에 그들 역시 존재하지 않는 행성에서 온 사람들처럼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함과 동시에 애지중지하며 지극하게 아끼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이토록 모순적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