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궂은 친절을 뒤로하고.
그대가 머물던 자리에 앉고 보니
무슨 생각을 했을지 부리가 뾰족한 새가
뇌를 관통하고 지나가버린다.
주저하며 건네려던 얇은 진실은
누군가에게 도착하기 전에 비를 맞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녹아버렸다는 걸 알까.
마음과는 다르게 오해를
켜켜이 쌓아두어야
진심을 들키지 않을 수 있기에
불안하지 않았을 테니.
그렇게 무표정하게 음악을 듣고
하염없이 거리를 걷고
무심한 척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면서.
그러다 보면 위선으로 뭉쳐버린
무채색의 하루가 또 멍하게 흘러가고.
당신이 남긴 침묵의 이유가
곧 떠오를 달에게 안긴 채
다가오는 저녁에 묻혀 슬며시 잠겨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오늘에게 끌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