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간헐적 단식에서 3일 단식까지
작년 여름부터 시작해서 올해 내내 간헐적 단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보통 오후 4시쯤에 마지막 음식을 주로 그릭요거트 같은 단백질로 먹고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음식을 먹지 않는 16시간 단식을 매일 반복했다. 속도 편하고 숙면에도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도 체중이 많이 빠지면서 온갖 건강지표가 개선되었다.
작년 여름, 갑상선 암 표지가 발견되면서 라이프스타일을 확 바꾸게 되었다. 한국에서 받은 건강검진 덕분에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고, 그때 너무 건강에서 먼 라이프스타일로 지내고 있었다는 걸 충격적으로 깨달았다. 그 계기로 많은 것을 바꾸었고, 18개월 동안 간헐적 단식을 통해 40파운드(=18kg) 정도 체중을 감량했다.
매일매일 하는 간헐적 단식에 익숙해져, 매일 16시간 하는 단식 말고 아예 며칠간 단식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평생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한번도 떠올려본 적도 없는 게 단식이었는데 간헐적 단식의 효과를 보고 연말을 맞아서 72시간 단식을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본래는 올해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크리스마스날을 끼고 하려고 했는데, 식구들이 미리 시댁으로 출발하게 되기도 했고 식재료 쇼핑을 안해놨다는 걸 깨달은 12월 19일 목요일날 그냥 그날 저녁부터 단식에 돌입하기로 했다. 그러면 일요일인 22일 저녁때쯤 72시간이 끝나는 스케쥴이었다.
19일 저녁, 마지막으로 그릭요거트와 블랙베리를 먹고, 식구들을 공항까지 태워다 준 다음 한국장에 들러서 단식동안 마실 카페인과 칼로리가 없는 도라지생강차와 우엉차, 72시간 단식이 끝나면 보식으로 먹을 곰탕 국물과 죽 따위를 사왔다. 그 날은 보통의 간헐적 단식 16시간과 별로 다르지 않으니까 저녁에 잘 자고 아침에도 편안하게 일어났다.
20일에는 오전에 좋아하는 요가 클래스도 다녀오고 오후에는 비가 멈춘 사이 잠시 산책도 다녀오고 활기차게 보냈다. 단식 시작 전에 감기가 끝물이기도 해서 몸을 따듯하게 유지하는 것에 여러가지 방안을 마련해 두었다. 물을 계속 데워서 따듯하게 마시고, 레몬즙을 섞거나 도라지생강차와 우엉차를 우려서 마셨다. 평소에 먹는 약과 비타민등은 계속 시간 맞춰서 먹고, 혈중 미네랄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네랄 태블릿을 먹어줬다. 단식 24시간이 지나도록 배고프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저녁에는 더운물로 목욕하고 일찍 잤다.
21일날 아침, 일어나보니 그 전날에 비해서 몸무게가 2.3파운드 줄어 있었다. 근육량은 변화가 없는데 지방만 1.8파운드나 빠졌다고 했다. 단식에 힘입어 15년만의 몸무게 최저점을 경신했다. 단식 42시간째에는 가벼운 요가 플로우 클래스를 다녀왔고, 계속 비가 오고 안개 끼는 추운 날씨여서 체온 유지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계속 따듯한 물을 마시고 전기 장판으로 몸을 데우기도 하고 더운물 목욕도 하고... 단식 48시간째가 되자 드디어 배가 고파졌다. 뱃속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나고 먹고 싶은 것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몸이 원하는 것인듯 주로 탄수화물들이 생각이 나서 먹고 싶은 것들을 적어두었다. 장이 파업했을 거라서 수용성 섬유질을 물에 타서 먹어줬는데 이것만으로도 좀 부대끼는 느낌이 들었다. 48시간 이후부터는 소변에 케톤체가 섞여서 나오는 걸 케토시스 검사 스트립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땀냄새나 입냄새도 달라지는 것 같더라. 이 날은 힘이 없어서 일찍 누웠는데도 잠은 잘 안 오고 자다 깨다 수면의 질은 낮았다.
22일날 아침에는 그 전날 같은 시각에 비해서 -1.6파운드 정도로 다시 최저점을 경신했다. 이 날은 종일 기운도 의욕도 없었다. 달리기 트레이닝 중에서 언덕 달리기를 할 차례여서 나가긴 나갔는데 기운이 없어서 휘적휘적 대충 뛰고 들어왔다. 그래도 단식 중에 하루 한번은 뭔가라도 운동을 했다는 것에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팔을 들어올리거나 앉았다가 일어날때 힘이 든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고 머리도 뭉근한 두통이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무엇도 할 의욕이 안 들어서 누워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놀랍게도 단식 70시간 째에 커피를 아주 연하게, 평소의 1/4 정도도 안되는 묽기로 타서 마셨더니 갑자기 의욕이 확 샘솟고 머리가 명료하게 맑아졌다. 놀랍게 맑은 머리로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 마인드맵을 그리고, 이 후기를 적기 시작했다.
후기를 적는 사이에 단식 72시간이 지났다. 레토르트 곰탕국물과 전복죽을 데워서 먹었는데 먹자마자 기운이 확 샘솟는 대신 배가 불러서 터질 거 같다. 먹고 싶은 것들 리스트를 적으면서 단식 끝나면 바로 슈퍼 가야지 했는데 오늘 안 가도 될 거 같다.
생각보다는 괴롭지 않은 72시간 단식이었는데, 특히 머리가 맑아졌을때 경험이 매우 좋았고, 사흘동안 시간 맞춰서 먹을 것을 생각하고 만들고 준비하는 일이 없어서 자유스럽기도 하고 시간이 짜임이 없기도 했다. 일년에 1-2회 정도 해도 좋을 것 같다. 오토파지(낡은 세포 자가포식)가 정말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들 단식하면 피부가 좋아진다는데 나는 기막히는 남태령 경찰사건 포스팅 올라오는 것들 보고 연대한 시민들 사연 보고 우느라 얼굴은 다 깔깔해졌지만.
단식을 다시 또 한다면:
매일 커피를 연하게 조금씩 마신다
일정을 좀 짜두고 바깥에 나갈 일을 만들고 조금은 바쁘게 지낸다
체온 유지에 힘 쓴 것은 매우 좋았다
요가를 매일 가면 좋겠다
정신이 명료해지는 시간에 할 생각 태스크들를 미리 마련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