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vs "사바티컬", 같은 시간 다른 무게
퇴사 후, 나는 그 시간을 뭐라고 불렀나.
처음엔 이름이 없었다. 그냥 "쉬는 시간"이라고 했다. 아니, 사실은 "쉬고 있는 상태"라고 말하기가 불편했다. 누군가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뭐 해요?"
이 질문 앞에서 자꾸 작아졌다.
대학 선배 VC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빨리 다시 시작해. 6개월 놀면 6년 놀게 된다." 저주 같은 말이었다.
그 말 때문에 더 조급했다. 내가 지금 비어있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비어질 것 같은 두려움.
"회사를 나왔어요"는 대답이지만, "지금은?"이라는 후속 질문에 답할 말이 없었다.
무직? 백수? 구직 중?
다 어색했다. 그냥 비어있는 상태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설명할 수 없음이 VC의 저주를 더 현실화시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시간을 **"사바티컬"**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바티컬. 학문의 전통에서 나온 말이다. 일정 기간 업무에서 벗어나 자신을 성찰하고 회복하는 시간. 학자들이 책을 쓰거나 연구를 깊이 있게 하기 위해 가지는 시간이다.
그 말을 내 것으로 가져오자, 뭔가 달라졌다.
"요즘 뭐 해요?"라는 질문에 **"사바티컬 중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건 비어있는 게 아니라, 채워지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비어있는 것. 내가 내 시간에 대한 권리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VC의 저주 같은 말도 달라 보였다.
"6개월 놀면 6년 놀게 된다"는 말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놀 때"의 이야기다. 명확한 이름도, 의도도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때의 이야기다.
내 시간은 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사바티컬이었다.
FOMO는 사라지지 않았다. 조급함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내 선택을 흔들 수 없었다.
왜냐면 그 시간이 명확한 이름을 가진 순간, 그건 유예가 아니라 계획이 된 거니까.
"놀고 있다" vs "사바티컬 중이다"
같은 시간이지만, 이름 하나가 주는 무게감이 다르다. 한쪽은 죄책감이고, 다른 한쪽은 의도다.
"백수"라고 부르는 순간, 그 시간은 부끄러운 공백이 된다. "사바티컬"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시간은 의미 있는 선택이 된다.
이름은 정체성이다.
이름이 있으면, 그건 더 이상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된다. 내 사바티컬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이 있으면, 그건 회피가 아니라 선택이 된다.
그 시간을 "쉼"이 아니라 뭔가로 이름 붙여라. 막연히 쉬는 게 아니라, 사바티컬, 재충전 기간, 커리어 리셋, 전환 준비... 당신의 의도를 담은 이름을 찾아라.
"백수", "무직", "구직 중" 같은 말 대신, 의도를 담은 이름을 찾아라. 이름이 당신을 정의한다.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라 능동적인 선택으로 만들어라.
그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준비"라는 걸 자신에게 말해줘라. 남들에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 말해야 한다. "나는 지금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건 비어있는 게 아니라 채워질 시간이 된다. 빈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준비된 공간이다.
당신도 회사를 나왔다면, 그 시간을 뭐라고 부르고 있나요.
그 이름이 당신을 작게 만드나요, 크게 만드나요.
퇴사는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 전의 준비 시간이다. 그 시간에 명확한 이름을 붙여라.
이름이 있으면, 그건 더 이상 불안한 공백이 아니라 의미 있는 여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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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ya Sanyour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