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멘탈 지키는 법: 호기심을 되찾자

다음 직장이 아니라 다음 호기심을 찾는 시간입니다

사바티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끝이 아니다.

문제는 퇴사후 다음 회사에서 시작할때까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다.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이 커지고, 너무 많이 하면 또 소진된다.


나는 회사와 회사 사이의 사바티컬 동안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내가 해낸 것들을 찍어두는 것. 못 해낸 것들은 흘려보낸다.


Stake on the ground

Stake on the ground. 땅에 말뚝을 박는다는 뜻이다.

회사를 나온 순간, 내 존재감이 흔들렸다. 명함도 없고, 소속도 없고, 타이틀도 없으니 나는 뭐지? 그 질문 앞에서 계속 작아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만든 것들, 해낸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시드 투자 30억 가까이 유치했던 것

그 회사에서 만든 프로덕트와 고객들

6년간 운영했던 두 번째 회사의 SaaS

18년간 이어온 우리 가족의 연간 플래닝

내가 디자인하고 기획했던 프로젝트들

내가 멘토링했던 사람들


실패한 회사라도, 망가진 프로젝트라도, 그 안에는 내가 만든 것들이 있었다.

이걸 적는 순간, 나는 "백수"가 아니었다.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만들어온 사람이었다. 일단 땅에 말뚝을 박아두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제일 먼저 내 자신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멘탈헬스를 지키는 첫 번째 원칙

사바티컬 동안 멘탈헬스를 지키는 첫 번째 원칙은 이거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착각과 싸우지 마라. 내가 이미 해낸 것들을 먼저 확인해라.


퇴사하면 모든 게 리셋된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당신이 쌓아온 경험, 만든 결과물, 해결한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걸 적어라. 구체적으로. 자랑스럽게.

"나는 팀을 이끌었다"가 아니라 "나는 5명의 팀을 3년간 이끌며 3개의 프로덕트를 런칭했다"

"프로젝트를 했다"가 아니라 "월 10만 유저가 쓰는 기능을 설계하고 구현했다"

"회사를 운영했다"가 아니라 "30억 투자 유치, 15명 팀 빌딩, 2년간 런칭과 피봇을 반복했다"

구체적으로 적을수록, 당신은 명확한 사람이 된다.


멘탈헬스를 지키는 두 번째 원칙

두 번째 원칙은, 하루를 구조화하라.

사바티컬이라고 아무 것도 안 하면 안 된다. 시간이 흐물흐물해지면 불안도 함께 커진다.


나는 이렇게 했다:

오전: 나를 채우는 시간

책 읽기, 글쓰기, 새로운 것 배우기

"생산"이 아니라 "흡수"에 집중

조급함 없이, 흥미로운 것 탐색

오후: 작은 프로젝트

지금 만드는 제품의 초기 버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완성이 목표가 아니라 "손을 움직이는" 게 목표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

저녁: 사람 만나기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과 이야기

조언 구하기보다 경험 나누기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기


핵심은 리듬이다. 매일이 똑같을 필요는 없지만, 흐름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늘 뭐 했지?"라는 공허함 대신 "오늘 이걸 했네"라는 확인이 생긴다.


멘탈헬스를 지키는 세 번째 원칙

세 번째 원칙은, 호기심의 불씨를 다시 지펴라.

회사를 나왔을 때 가장 무서운 건 무기력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 아무것도 재미없는 상태.

그건 소진의 증거다. 너무 오래 버텨서, 호기심까지 갉아먹힌 거다.


사바티컬은 다음 직장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호기심을 되찾는 시간이다.

나는 9개월 동안:

일에 대한 호기심을 다시 찾았다. "이런 것도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는 감각

툴에 대한 호기심을 다시 찾았다. Figma의 새 기능을 따라잡고, 바이브코딩을 실험하고, 새로운 걸 시도하는 즐거움

무엇보다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다시 찾았다. "이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지?" "저 분야는 어떻게 돌아가지?"


목표는 크게 가져갈 필요 없다. 그냥 "오, 이거 신기하네" 하는 순간을 하루에 하나씩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호기심이 돌아오면, 방향은 저절로 보인다.


멘탈헬스를 지키는 네 번째 원칙

네 번째 원칙은, 결과를 기대하지 마라.

사바티컬은 "다음 걸 찾는" 시간이 아니다. "나를 찾는" 시간이다.


9개월 동안 나는 다음 직장을 찾지 않았다. 대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탐색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지 실험했다

내가 누구와 일하고 싶은지 정리했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다음 6년도 없었다.

조급하게 결과를 찾으려 하지 마라. 사바티컬의 결과는 나중에 온다. 지금은 그냥 씨앗을 뿌리는 시간이다.


멘탈헬스를 지키는 다섯 번째 원칙

다섯 번째 원칙은, 혼자 버티지 마라.

가장 힘든 건 고립이다. 회사를 나오면 매일 만나던 동료도, 슬랙 메시지도, 회의도 사라진다. 그 빈자리가 외로움이 된다.


나는 의도적으로 사람을 만났다.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친구들

창업 실패를 겪은 선배들

커리어 전환을 고민하는 사람들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사바티컬은 지키는 시간이다

사바티컬은 비우는 시간이 아니다.

나를 지키는 시간이다.

회사에서 소진된 나를, 망가진 자존감을, 잃어버린 호기심을 되찾는 시간.

그러려면:

내가 해낸 것들을 먼저 확인해라 (Stake on the ground)

하루를 구조화해라 (리듬을 만들어라)

호기심의 불씨를 다시 지펴라 (작은 "오" 하는 순간들)

결과를 기대하지 마라 (씨앗 뿌리는 시간이다)

혼자 버티지 마라 (연결을 유지해라)


당신이 지금 사바티컬 중이라면, 혹은 곧 시작할 거라면 기억해라.

이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당신을 지키고, 호기심을 되찾고, 다음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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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Gary Butterfiel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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