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서 생각하고 싶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을까

연말 플래닝 누적 2500명, 레이오프 응급키트 200뷰가 말해준 것

"퍼스널 플래닝 템플릿 팔던 사람이 요새는 왜 갑자기 퇴사핑이 되었냐"고 물어보신 분이 있었다. 스레드에도 한번 쓴 적이 있는데, 브런치에 좀 더 정리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나는 19년째 매년 연말에 한 해를 돌아보고 다음 해를 설계하는 퍼스널 플래닝을 하고 있다. 연말부터 지켜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걸 템플릿으로 만든 게 MePlan이고, 그동안 이걸 나누고 팔아왔다. 지금까지 누적 2500여 명이 써주셨다. 해마다 조금씩 늘어서 여기까지 온 거다. 조용하지만 꾸준한 수요.


이 숫자가 알려준 건 이거다. 멈춰서 생각하는 시간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바쁘게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깐, 나 지금 어디 가고 있지?"를 물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꽤 있구나.


그렇게 19년을 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사람들이 진짜 절실하게 멈추고 싶어하는 순간은 연말만이 아니더라. 직장을 떠나야 할 때, 레이오프를 당했을 때, 사업을 접어야 할 때. 삶의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바뀌는 그 순간들.


아마존 레이오프 때 생긴 일

올 초에 아마존 대규모 레이오프 소식이 터졌을 때, 급하게 레이오프 응급키트를 만들어서 올린 적이 있다. 한글로만 만든 거다. 200뷰가 나왔다.


숫자로 보면 대단한 건 아니다. 근데 한글 콘텐츠에 200뷰면, 이건 바이럴 된 게 아니다. 광고도 안 했고, 어디 퍼진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 레이오프를 당했거나 당할 것 같은 (아마도 미국에서 일하는 한국)사람들이 알아보고 클릭한 거다. 필요해서 찾아온 사람들.


이 두 가지가 나한테는 같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연말에 플래닝 템플릿을 찾아와서 누적 2500명이 된 것이나, 레이오프 응급키트를 검색해서 찾아오는 200명이나 — 결국 원하는 건 같다. 큰 변화 앞에서 "지금 나는 어디 있지? 다음은 뭐지?"를 구조적으로 짚어주는 프레임.

그게 있으면 실제로 다르게 움직이게 되더라.


내가 직접 겪었으니까

나도 직접 겪었다. 테크업계/실리콘밸리에서 14년 일하면서 퇴사도 하고 레이오프도 당해봤다. 그 후에 창업해서 투자 유치하고 팀 꾸리고 제품 만들어 파는 사이클을 9년간 두 번 반복했고, 2024년에는 회사를 닫기도 했다.


회사를 접는 건 퇴사보다 훨씬 복잡한 종류의 떠남이었다. 투자자에게 연락하고, 팀원에게 말하고, 법적 절차를 밟고, 고객에게 안내하고 —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실패한 건가?"라는 질문과 싸워야 했다.


그때 나를 지킨 게 결국 19년간 해온 그 퍼스널 플래닝 습관이었다. 멈추고,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부터 보고, 방향 잡고, 다음을 설계하는 것. 매년 연말에 하던 것과 똑같은 구조였다. 맥락만 달랐을 뿐.

그때 확신이 왔다. 이건 연말 행사가 아니라 삶의 전환점마다 필요한 기술이구나.


"Live by design, not by default"가 더 무섭게 들리는 이유

MePlan의 철학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인데, 이걸 영어로 옮기면 "Live by design, not by default"다.


한글로 들을 때는 철학적으로 들린다. 근데 영어로 보면 좀 더 무섭게 와닿는다. Default. 아무것도 안 건드리면 자동으로 설정되는 그 디폴트.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삶이 디폴트 모드로 굴러간다는 거다.


레이오프 당한 사람도,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도, 사업을 접은 사람도 — 결국 디폴트에서 벗어나서 자기 손으로 다음을 설계하겠다는 순간에 변화가 시작된다. 그 순간을 만들어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만들고 있다

지금 퇴사와 커리어 전환을 앞둔 사람들을 위한 생각 프레임워크 템플릿을 만들고 있다. 이력서 쓰는 법이나 면접 팁 같은 게 아니다. 그런 건 이미 여러 좋은 것들이 넘쳐난다.


이건 떠남이라는 큰 변화 앞에서 나를 지키면서 방향을 잡는 구조화된 사고 과정이다. MePlan의 회고→방향→실행 구조를 커리어 전환이라는 가장 뜨거운 순간에 적용한 버전이다.


누적 2500명이 찾아온 그 멈춰서 생각하는 경험을,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순간들에 쓸 수 있도록.

곧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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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thony Tr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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