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퇴사를 결정했다
갑자기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었다.
헉, 했다. 근데 그 다음 순간 솔직히 말하면 안심이 되고 반가웠다(??). 드디어 정당하게(???) 퇴사할 이유가 생겼다고.
이 감정이 말이 안 된다는 거 나도 알아. 암 진단이 반갑다니. 근데 그때 내 상태가 그랬어. 회사상황도 그렇고, 얽힌 게 많아서 퇴사를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거든. 스트레스가 극심했는데도.
진단을 받고 나니 삶의 우선순위가 순식간에 바뀌었어. 11살 아들한테 회사에서 성공하는 엄마가 더 중요하겠어, 살아서 곁에 있는 엄마가 더 중요하겠어. 이 회사랑 오래 가겠어, 이 몸뚱아리랑 오래 가겠어.
그동안 중요하다고 붙들고 있던 것들이 촤라락 바뀌는 데 5분도 안 걸렸어. 그렇게 꽉 쥐고 있던 것들이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한 게 아니었던 거야. 내 몸이, 내 시간이, 내 아이 곁에 있는 것이 진짜였는데.
그리고 또 하나. 이제 떳떳하게 나갈 수 있다는 안심감. 객관적으로 증명이 된 거잖아, 아프다고. 그동안은 지쳐서 나가고 싶다고 해도 그게 이유가 될 수 있나 싶었어. 나약한 건 아닌가, 좀 더 버텨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진단서가 생기니까 그 망설임이 사라지더라고. 그게 또 슬펐어. 몸이 망가졌다는 증거가 있어야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니까.
돌이켜보면 신호는 훨씬 전부터 있었어. 아무리 쉬어도 회복이 안 됐고, 자다가 회사 일 생각에 깜짝 놀라며 깼고, 새벽에 불안해서 폰을 켰고, 뭘 들어도 피곤하기부터 했어. 그게 다 SOS였는데 나는 계속 아직 준비가 안 됐어만 하고 있었던 거야.
몸은 나보다 솔직하거든. 머리는 버텨야 한다고, 조금만 더 하다 보면 나아질 거라고 계속 설득해. 근데 몸은 그냥 신호를 보내. 그게 쌓이다 쌓이다 나한테는 진단으로 왔어.
퇴사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어. 뒤처리해야 할 것들이 있었거든. 그래도 다 끊어내고 나왔어. 그리고 정말 푹 쉬는 데 집중했어. 그때서야 몸이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하더라고.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비슷한 감각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아프면 쉴 수 있는데, 멀쩡하면 못 나가는 것 같은 그 감각. 몸이 그 정도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준비가 됐든 안 됐든 퇴사를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완벽하게 준비된 퇴사는 없어. 몸이 망가진 다음에 나오는 것보다는 지금 나오는 게 나아.
막상 나오려니 무서운 거 알아. 생각이 정리되고 이후 계획이 보이면 그 무서움이 줄어들거든?
그래서 그때의 저처럼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단단하게 나올 수 있게 퇴사이직 전략키트를 만들어요. 링크는 여기 https://tumblbug.com/quit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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