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그림자
2014년 5월, 엄마와 함께 일본 여행을 갔다. 이번 여행은 이색적인 풍경을 본다며 관광을 가장하였지만 실제론 먹기 위해 걷고 또 걸은 맛집 투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공항 편의점을 서성이며 마지막 만찬 거리로 뭐가 좋을지 눈을 굴리다 우동과 멘타이코(명란젓) 삼각 김밥에 시선이 멈췄다. 후쿠오카의 명물인 명란으로 마무리 입가심한다는 건 나에겐 꽤나 의미 있는 일이었다. 여행의 처음과 끝은 현지 음식으로 해야 한다는 나만의 법칙을 몇 년째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먹다 지쳐 입맛 없다는 엄마를 이끌고 테이블 앞에 서서 주문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는 커피를 마시며 저게 먹신인가 사람인가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에 아랑곳 않고 지금 먹는 음식과 최고의 조합을 생각해내었다.
“맥주도 한 잔 할까? 일본은 맥주가 기막히잖아!”
기가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와 주문하느냐 마느냐 아웅다웅할 사이, 그곳에는 우리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있었다.
“여기 맥주 맛있어요.”
우리 바로 앞 테이블에 서서 생맥주를 마시는 중년의 아저씨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엄마랑 딸이랑 둘이서 여행하는 게 보기 좋네요.”
출장 때문에 혼자 왔다며 자신을 소개한 아저씨는 비행시간까지 삼십 분이나 남았다며 우리가 질문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신변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와 나, 우리 중 그 누구도 아저씨에게 정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울산에 삽니다. 일산에도 집이 있는데 지금은 전세 줬고 곧 이사 가려고요. 둘째 아들이 큰 형보다 먼저 결혼했는데 손주 태어나면 근처 살아서 자주 봐야 하니까. 큰 아들은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작은 아들은 학원의 실장을 맡고 있죠. 작은 며느리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이에요. 다 좋아. 근데 큰 아들이 결혼을 해야 하는데 맨날 외국으로 나돌아 다니고 그래서 내 보기엔 아가씨가 괜찮아 보이는데........ 우리 아들 만나볼래요? 잘 생겼어. 사진 보여줄게.”
아저씨는 핸드폰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잘생기고 건실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화면에서 방긋 웃고 있었다.
솔로 생활 2년 차, 순간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본 엄마의 표정은 초면에 예의를 지키느라 미소 짓고 있지만 ‘이 사람이 내 딸한테 지금 뭐 하는 거야?’라는 노여움이 슬며시 배어있었다. 나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제 나이가 몇 살인 줄 아시고 그러세요?”
“아가씨 나이야 아들보다 적겠지. 내 아들 나이가 서른다섯이요.”
거절을 위한 완곡한 말을 하려는 찰나, 아저씨는 이 틈을 노려 명함 뒤편에 아들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나에게 내밀었다.
“한국 가면 아들에게 연락해 봐요. 지금 엘에이인데 한국 핸드폰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연락될 거 에요.”
명함만 받으면 지금 이 상황은 끝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 연락처를 알려주는 것도 아닌데 오늘의 만남은 여행지의 해프닝으로 남겨두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그런데 이것은 클라이맥스를 위한 1절이었다. 바로 이어 아저씨의 2절이 시작됐다. 상사맨으로 살아온 인생 역경 스토리로 말이다.
아들 둘 좋은 거 먹이고 좋은 데 보내고 하고 싶은 공부시키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 목표였다는 아저씨는 세계 유명한 곳은 어디든 안 가본 곳이 없었다. 비행기를 수도 없이 탔지만 절약하기 위해 이코노미만 타고 다닌다고 했다. 마일리지도 엄청 모았고 이걸로 여행도 갔으며, 둘째 아들 결혼식은 애들의 성화로 부모의 리마인드 웨딩과 함께 동남아 해변에 가서 합동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아저씨는 아들과 자신의 결혼식 이야기를 할 때 굉장히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시원하게 웃었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 듬뿍 느껴졌다. 처음에는 아저씨의 돌직구 접근법이 무척이나 난감했지만 인생사를 듣고 난 후 아저씨의 환한 표정을 보고 나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마디 추임새도 없이 조용히 듣고만 있던 엄마도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한결 가벼워진 표정이었다.
어느덧 탑승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아저씨에게 처음 본 나를 왜 아들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모녀가 사이좋게 여행을 온 모습이 보기가 좋았어요. 어머니를 보면 딸을 알 수 있는데 어머니 인상이 좋으셔서.”
마지막 한방의 멘트로 후쿠오카 여행은 두고두고 엄마에게 회자될 기념비적인 추억이 되었다.
나는 서울로, 아저씨는 부산으로 각자의 길을 가기 위해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짧지만 강렬했던 아저씨의 기운 때문인지 체력이 순식간에 바닥이 났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아저씨와의 시간을 곱씹어보았다.
낯선 이에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는 아저씨의 배짱에 처음 놀랐고, 가족을 향한 사랑과 자신감에 두 번 놀랐다. 나는 엄마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밖에서 딸 자랑을 하는지. 엄마는 자랑도 정도 것이라고 사람들이 뭐라 그런다며 딸 자랑 안 한다는 시크한 답을 하셨다. 하긴 아저씨의 아들 자랑과 며느리 자랑이 팔불출스러워 보이긴 했다. 하지만 가족을 이야기하는 아저씨의 눈빛과 표정은 그 어떤 모습보다 활기차고 빛이 나보였다. 가족을 향한 애정이 아저씨만의 별을 만들어 그 자체로 빛나게 했다. 그것은 그 누구도 함부로 가질 수 없는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아저씨의 가족을 검색해보았다. 칭찬이 자자하던 며느리가 연예인인 관계로 SNS에서 곧바로 아저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남아 해변에서 진행한 리마인드 웨딩사진 속에는 멋진 선글라스를 쓰고 환하게 웃는 아저씨가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서있었다.
아저씨에게 죄송하지만 명함에 적힌 첫째 아들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저 후쿠오카 공항의 유쾌한 만남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간 인연이었지만 당신의 환한 웃음을 기억합니다.
언제나 가족과 함께 행복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