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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청산도 공사장의 아저씨들>

함께 걷는 그림자

by 그림자

2009년 6월 초, 유학 중에 한국에 잠시 들어온 사촌동생과 함께 국내여행을 떠났다.

당시의 우리는 청량하게 깨끗한 바다를 볼 수 있는 따뜻한 남쪽 지방을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목적지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 청산도였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저녁 무렵에야 완도에 도착했다. 우린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오전 배를 타고 청산도에 입성했다. 배에서 바라본 청산도는 섬 전체가 반짝 거리며 빛나는 보석 같았다. 이는 쨍하게 맑은 햇살이 바다와 섬에 반사되어 만들어낸 장관이었다.


그러나 장미처럼 섬의 아름다움 속에는 치명적인 가시, 단점이 있었다. 초여름이었지만 섬 전체가 끓는 용광로처럼 엄청 뜨거웠다. 우린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빌리지 않은 뚜벅이 여행자였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도로에서 어떻게든 길가의 그늘을 찾아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그렇게 우리가 묵을 펜션을 찾아가던 길에 있던 공사현장을 지날 때였다.


“거기 아가씨들 밥 먹고 가쇼잉.”


공사장 인부 아저씨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딱 점심시간이었다. 공사장 옆 평상에서는 아저씨들이 점심상을 차리고 있었다. 마침 엄청 배가 고팠고 점심을 해먹을 기력이 없던 우리는 넙죽 초대에 응했다.

상에는 제육김치볶음, 양념게장, 쌈야채, 양념쌈장, 곰국, 젓갈, 물김치, 나박김치가 한창 푸짐하게 차려졌다. 그리고 작업에는 필수로 따라붙는 반주, 잎새주가 살포시 상에 놓여있었다.


여기까지는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새참 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청산도가 아니겠는가.


우리를 불러 세웠던 아저씨가 공사장 바로 앞 방파제에 있던 어망에서 전복 두 마리를 꺼내왔다. 그리고 듬성듬성 잘라 우리 앞에 놓았다.


“아침에 잡은 자연산 전복이라잉. 거 서울 아가씨들은 이리 실한 거 몬 먹어 봤을 텐께 한 마리씩 드쇼잉.”


갑자기 벌어진 너무나 황송한 환대에 우리는 입이 떡 벌어졌다. 이런 감사한 대접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잘 먹어드리는 게 인지상정, 따뜻한 밥에 갖가지 반찬을 입에 가득 넣고 맛있게 먹었다. 특히 자연산 전복의 꼬들 거림은 최고였다.


나는 청산도에서 살아가는 이분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밥을 먹으며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청산도의 역사와 풍습을 듣게 되었다.

아저씨들은 과거 청산도에도 해녀가 많았는데 다들 제주로 넘어가서 몇 명 남지 않았다고 했다. 거기다 육지로 나가는 사람도 많아 인구가 줄어들어 중학교도 폐교되었다. 그런데 역으로 방송 때문에 섬이 유명해져서 펜션이나 가게를 여는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왔다 했다. 우리가 묶을 예정인 펜션도 외지인이 와서 세운 건데 나름의 텃새 때문인지 탐탁지 않아하는 눈치였다.


몇몇 아저씨들은 젊을 때 육지로 나가 이일 저일 해봤다고 했다. 하지만 육지경험의 끝은 청산도로의 귀향이었다. 현재는 예전이랑 다르게 청산도에도 일거리가 많고 살기에 참 좋은 곳이라는 자랑도 하셨다. 그런데 아이들 학교 때문에 그게 참 문제라 걱정이 많다고 했다. 우리를 불렀던 아저씨는 아들이 중학생인데 완도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중이랬다. 평상시에는 통화로만 안부를 묻고 주말에 가끔씩 보면서 지낸다고 했다. 그리고 곧 여름방학이기 때문에 아들이 섬에 오니까 그전에 펜션공사를 완성하는 게 목표라 하셨다.


한국인의 밥상을 촬영하면 이런 기분일까?

방문한 지역의 음식을 먹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나눈다. 그러면 음식 안에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다. 나중에 그곳을 떠올리면 그 맛이, 그 순간이 연상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점심을 얻어 먹었응께 여기 펜션 하나 지을라 카는디 이름 좀 져봐.”


아저씨는 식사의 마무리로 따뜻한 333 커피(커피3 프림3 설탕3)를 건네며 우리에게 뜻밖의 물음을 주셨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펜션이 지어지고 나면 건물 안 큰 창에서 보게 될 탁 트인 바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시에 뭐라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반주의 술기운도 올랐겠다 아마 엄청 단순한 이름을 턱 하니 말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언덕 위의 하얀 집 아류인 바다 위의 하얀 집 같은?


아저씨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그 뒤 3일 동안 청산도의 곳곳을 다니며 좋은 분들을 많이 마주쳤다.


경운기 당리 할아버지,

히치 하이커를 구해준 광주 청년들,

슬로시티 사무관 아저씨,

등대교회 목사님과 신도 아주머니들,

해양경계관리 박씨 아저씨,

민박집 내외분 등등


정말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고 감동을 받았다.


청산도는 자연경관이 멋있어서 좋은 섬 이기보다,

사람이 좋아서 기억에 남은 섬이 되었다.

빛나는 섬에는 빛나는 그들이 섬을 찬란하게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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