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훈 Nov 03. 2024

조약돌의 성실함

 아기가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면 보호를 위해 가지고 있는 면역력이 떨어진다. 그때부터 감기에 걸리거나 열이 오르거나 하는 일이 시작되는데, 설영이는 태어난 지 221일이 된 어제 갑자기 39도까지 열이 올랐다. 드디어 때가 됐나 싶어서 미리 사두었던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해열제를 먹였는데 38도쯤까지 떨어지고 별다른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토요일이라 그냥 월요일까지 버틸까 하다 근처 마트 안에 토요일까지 진료를 보는 소아과가 있어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뜻밖에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돌아왔다. 7개월이 되어 요즘 하루에 천 번씩 일어서기에 매진하는 우리 딸이 엎드려서 기어다니지도 않고 바닥에 누워서 안아달라고 팔다리만 흔들어대는 걸 보고 있으니 너무 안쓰러웠다.

 영유아 시기에 아프면 어떤 패턴을 보이는지 나는 잘 모른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열이 났을 때 설영이는 아프다고 울거나 떼를 쓰지 않았다. 설영이는 평소에도 잘 울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눈에 안 보이면 그냥 소리를 내며 찾기만 할 뿐이다. 설영이가 울 때는 졸릴 때 들지 않고 바닥에 놓았을 때나 머리를 박거나 어디 부딪혀 아플 때뿐이다. 진료를 보기 전에 먹인 아세트아미노펜이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 같아 덱시부프로펜으로 해열제 종류를 바꿨다. 열은 처음에 39도를 찍은 다음에는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았고 38.9~37.4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설영이는 바닥에 있는 게 싫은지 계속 안아달라 했고, 아기띠에 설영이를 넣고 잠들면 내리고 깨서 울면 다시 넣고를 반복했다. 그래도 설영이는 이유식도 잘 먹고 분유도 잘 먹었다. 단지 기운이 조금 없을 뿐이었다.

 설영이는 어디에서 코로나19를 옳았을까? 내가 일을 하는 노인복지센터에는 요즘 직원과 어르신 가릴 것 없이 코로나19 환자가 생각보다 자주 나온다. 그래서 나도 걸리지 않았을까? 하고 검사를 몇 번 해보았는데 할 때마다 음성이 나왔다. 심지어 설영이가 확진되기 전인 금요일에도 해봤다. 나와 아내는 집에서 자가검사키트를 사용해 보았으나 여전히 음성으로 나왔다. 몇 번이나 했는데도 음성이 나왔으니 의아했지만 아마 우리 부부 중 한 명에게 옮았을 것이다. 새삼 어릴 적 자주 아팠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인후염이 자주 있어 밤새 끙끙 앓으며 혼미한 의식 속에 내 팔다리를 닦아주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난다.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그렇게 자주 아팠다. 만약 아직 돌도 안된 설영이가 지금부터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자주 아프다면 아마 내 의식 속에 우리 딸은 언제나 아플 수 있는 아이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그다지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다. 6년이 지나고 졸업식 날에 나는 개근상을 받았다. 별거 아닌 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게 개근상은 엄청난 노력의 대가였다. 내가 아픈 날 우리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빠지는 날이 없도록 하기 위해 아픈 나를 데리고 걸어서 학교를 올라가 교실 문을 열고 승훈이 왔으니 출석 처리를 해달라고 한 후 다시 데리고 집에 가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병원에 가고 아팠던 나를 매일 학교에 보내는 건 엄마에게도 큰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공부와 운동을 다 잘하고 튼튼했던 형과 많이 달랐던 나는 그렇게 몸이 아파 울면서 학교에 갈 때가 꽤 있었다. 엄마라도 아파 우는 내가 안쓰럽지 않았을 리는 없다. 다만 아프다고 학교에서 빠지면 혹시라도 기본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질지 걱정되었을 것이다. 엄마는 그러지 않아도 자신감이 없고 유약했던 내가 약한 몸을 가지고 있음에도 당당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고 싶어 하셨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강원도 원주에서 아빠의 월급으로 살림을 꾸리고 할아버지 댁에 돈까지 보내드리면서 자주 아픈 아들을 돌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의 노력으로 아파도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성실함이 지금 내가 가진 가장 큰 성격적 특징 중 하나다. 성장기에서부터 나는 줄곧 부족한 능력을 성실함으로 메워야 한다고 인식했다. 그 인식은 지금도 이어져 나는 모든 상황을 겪어 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한다. 요즘 세상은 노력의 강조가 독이 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세상을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성실함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준다. 매일을 성실하게 노력한다는 것은 일상이 훈련이 된다는 이야기다. 나는 귀찮고 하기 싫은 것을 하도록 훈련해 왔고, 별다른 특징이 없이 유약한 나는 귀찮은 것을 성실하게 의욕적으로 하는 게 장점이 되었다. 나는 빛나는 보석이 될 수는 없지만 파도에 깎여 둥그렇고 예쁘게 만들어진 조약돌이 될 수는 있다. 여전히 나는 별다른 재주도 없고 능력도 나아진 게 없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하루를 쪼개어 일과 육아와 집안일과 글을 쓰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남편이자 아빠인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검증된 일이다. 오늘 나는 설영이에 이어 코로나19 확진이 되었지만, 아플 내일을 대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놓고 모든 에너지를 담아 설영이를 돌보았다. 이미 나는 천식 발작이 올라오고 머리가 아프고 기침과 근육통, 열이 있다. 내일은 오늘 한 일들을 모두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미 설영이는 열이 내렸고 오늘 아프지 않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과 약속한 일주일에 한 편의 에세이쓰기를 오늘이 가기 전에 완성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