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며 아내가 줄곧 이야기 한 건 "육아는 엄마 아빠 두 사람이 같이 키워야 딱 맞는 것 같아."였다. 하지만 나는 업무 환경상 육아휴직을 하기 쉽지 않았다. 요즘에는 남편들도 3개월 정도는 육아휴직을 많이 하는 추세지만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법령으로 정해져 있는 거라 내가 사용하기로 마음먹으면 사용 못 할 것도 없지만 세상은 법령 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렇게 아내는 어머님의 도움과 퇴근 후 6시 40분 즈음에 집에 도착하는 나의 역할 분담을 통해 육아의 난이도를 조절해 왔다. 아내와 나와 설영이 셋이 함께하는 날은 연차 날과 주말 정도였다. 그리고 설영이가 코로나에 걸렸다. 그렇게 우리는 느닷없이 5일 동안 셋 만의 생활에 돌입했다.
설영이는 8월 24일 토요일에 확진이 되었고, 나는 25일, 아내는 26일에 차례대로 확진이 되었다. 태어난 후 6개월이 지나고 나면 엄마 배 속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면역력이 떨어져 열이 나는 경우가 흔해진다고 하던데 이제야 그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만 했지 아내와 나는 설영이가 코로나19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나는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직장에서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를 사용해 음성을 확인했었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옮은 건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발생된 상황이고, 중요한 건 설영이의 열을 떨어뜨리는 것과 그 외 다른 증상이 있는지, 증상이 있다면 어떤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설영이의 열은 처음 시작이 39도였고 아세트아미노펜 해열제를 주고 38.5도 정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아세트아미노펜보다 덱시부프로펜이 더 잘 듣는 것 같아 덱시부프로펜 해열제를 기본으로 아세트아미노펜 해열제와 교차 복용을 했다. 소아과에서는 설영이의 목이 많이 부었다고 했고, 항생제와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해 줬다. 영유아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건 의견이 다양하다. 우리도 고민이 있었지만 일단 의사의 말을 신뢰해 보기로 했다. 설영이의 열은 일요일 정도 즈음에는 거의 떨어졌다. 하지만 항생제 부작용에 따른 설사가 있었고, 설영이에게 처음 먹이는 물약들도 우리의 경험이 일천해 쉽지 않았다. 해열제는 일요일까지 먹게 한 후 더 이상 주지 않았고, 항생제도 월요일에 다시 진료를 받아 부작용을 설명하고 끊었다.
월요일부터는 아내와 나의 상태가 나빠졌다. 코로나19나 감기에 걸리면 기저질환인 천식이 악화된다. 더 나빠지기 전에 빨리 약을 처방받는 게 중요하다. 천식은 한 번 나빠지면 회복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내도 일요일부터 두통을 호소했다. 우리 집에서 제일 괜찮은 건 설영이었다. 설영이의 아침은 꽤 이르다. 보통 5시 10분에서 5시 50분 사이에 일어난다. 다시 재우거나 잠을 연장시킬 수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뜬 설영이는 바로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켜 옆에 있는 아내와 나, 또는 서랍장을 붙잡고 서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우리를 깨우려 노력한다. 곧 내가 잠에서 깨고 설영이는 배가 고프니 밥을 달라고 소리를 낸다. 우리가 많이 아팠던 월요일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몸이 안 좋다고 6시 정도에 깼다. 아내와 나는 생활 습관이 꽤 다르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그래서 설영이가 일찍 일어난다.)밤에 비교적 일찍 잠든다. 나는 어지간해서는 낮잠을 자지 않고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집안일을 한다. 그렇게 가능한 한 빨리 모든 일들을 끝내고 저녁과 밤에는 쉬고자 한다. 하지만 아내는 주로 밤에 무언가를 하거나 정리한다. 어쨌든 나에게 자기 전까지의 두어 시간은 방해받지 않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다. 설영이를 키워온 220여 일의 시간 동안 우리는 암묵적으로 일이 분배되어 있다. 나는 가능한 각종 집안일을 처리하고 설영이 목욕과 설영이 빨래를 개고 집이 항상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애쓴다. 아내는 이유식 만들기와 설영이 약 바르기, 재우기 등을 담당하며 집에 있는 물건 등의 위치를 조정하는 등 장기적인 물건 보관 등을 정하고 정리한다. 설영이는 돌아가면서 돌보는데 아내가 취약한 오전 시간을 주로 내가 커버하고 아내는 내가 산책하러 가는 낮의 한두 시간 정도를 커버해 준다. 육아 방법은 각자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주 양육자인 아내의 의견을 많이 따른다.
나는 다른 장점을 가진 사람끼리 결혼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나는 정하지 않아도 서로 잘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에 따라 생활한다. 예를 들면 무언가를 찾고 구매하는 건 아내의 역할이고 살림의 디테일을 살리는 건 나의 역할이다. 설영이의 시기에 따른 육아 계획 등을 수립하는 건 아내의 역할이고 해당 시기 설영이에게 적합한 육아 방법 등을 찾고 적용하는 건 나의 역할이다. 연차를 사용한 수요일까지 5일 동안 아내와 완벽하게 서로가 담당한 역할을 완성하며 육아에 매진했다. 몸이 아팠지만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는 일도 없었고, 설영이의 건강 상태도 순조롭게 회복되어 큰 염려를 하지 않았다. 우리의 끼니도 내가 주말에 미리 만들어놓은 대용량 볶음밥과 김치찜, 그리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주로 해결했다. 나는 매일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산책하러 갈 수 있었고, 아내는 피곤한 시간 동안 쉴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육아휴직을 내고 일 년 동안 둘이 같이 육아를 했다면 모든 게 완벽했을 것 같다. 육아휴직을 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다른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이 없고, 급여가 줄어들 염려가 없다면 나도 분명 육아휴직을 내고 더 적극적으로 육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5일간은 마치 두 번째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 같았다. 가지도 않는 여름휴가를 코로나19 확진으로 가족이 함께 집에서 보낸 것에 대한 소회가 남다르다. 이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말에 붙여 사흘간의 연차를 사용해 5일 동안 육아에만 전념하는 시간을 어떻게 또 가질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시간이 다시 오기 어렵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온 가족이 전염병에 걸려야지만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해괴한 일인가? 과거에는 대가족이 함께 살면서 누구든 아이를 돌볼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한 명이 아이를 전담해 스물네 시간 동안 계속 아이를 돌본다면 괜찮을 사람은 없다. 육아에는 최소한 두 명 이상이 함께해야 한다. 그러기 어렵다면 최소한 전담으로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당연히 모든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라도 없어야 한다. 육아를 하느니 매일 야근을 하겠다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이 횡횡하는 시대에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겠다는 사람이 적은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육아는 너무나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매일 만나는 기쁨을 온몸과 온 마음으로 체험하는 일이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육아를 추천할 수는 없다. 암묵적으로 각자의 역할을 정해 그를 잘 수행하고, 서로 배려하고 베풀어 사랑으로 육아에 대한 어려움이 적게 하는 건 글로 쓰지만 쉽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육아를 겪었는지를 각자 전시하는 세상이 되는 게 싫다. '네가 하는 육아는 육아라고 볼 수도 없어, 나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같은 말들을 하지 않게 되었으면 한다. 그 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다. 자신이 겪은 육아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출근을 앞둔 밤, 나는 코로나19로 인한 격리가 공식적으로 더 길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같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