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8개월이 되는 설영이는 이제 엄마와 아빠를 알아보는 걸 넘어 각자에게 원하는 놀이와 행동이 다르다. 설영이는 엄마와 주로 바닥에서 놀고, 때로는 엄마를 옆에 두고 혼자 논다. 반면 아빠와 있으면 주로 안아달라고 한다. 앞에서 설영이가 열심히 기어와 바짓단에 매달려 으쌰 으쌰 몸을 세워가며 안아달라고 하는 걸 보는 건 너무 사랑스러운 일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설영이는 나를 보면 안아달라며 온다. 그러면 나는 많이 안아주는 게 좋은지 나쁜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왼팔에 설영이를 올려 안고 집안을 활보한다. 설영이가 너무 사랑스러우면 볼을 마주치기도 하고 같이 거울을 보며 웃기도 한다. 때로는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고 때로는 설영이를 끌어안고 볼과 온 얼굴에 뽀뽀를 하기도 한다. 아빠의 어깨 위가 안전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는 설영이는 아빠에게 안겨 온몸을 비틀며 기하학적인 포즈를 만든다. 내가 설영이를 품에 안고 너무 좋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꼬옥 끌어안고 노래를 부르는 건 우리 집에서는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설영이는 내가 안아주고 들어주는 것에 익숙해 낮잠을 자러 방에 들어가면 내려놓고 잠을 자야 하는 걸 눈치채고 이미 울기도 한다. 졸리거나 배가 고플 때에도 설영이는 나에게 안아달라고 온다. 그럴 때 바닥에 내려놓으면 곧 눈물을 흘린다. 그 울음이 진짜 울음인지 가짜 울음인지 판단할 필요는 없다. 울음과 우는 표정, 속상한 소리를 내는 건 설영이의 의사소통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사랑스러운 설영이가 입을 삐죽하고 울 것처럼 시동을 거는 걸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한 훈육은 생각보다 일찍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 줘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훈육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딸이 기어 올라오는 것도, 엄마와 아빠의 안경을 낚아채려 하는 것도, 약통이나 지저분한 것들을 만져보기 위해 저 멀리서 최고 속도로 기어 오는 것도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설영이는 아직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설영이가 일으키는 어려움은 평균 기상 시간이 새벽 다섯시에서 여섯시 반 사이라는 것, 정말 너무 일찍 일어난다는 것 정도뿐이다. 설영이를 보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심지어 아침에 눈을 뜬 직후부터 몸을 세워 일어서는 행동을 반복하는 우리 딸은 의자와 안전문, 장난감, 가림막, 서랍장, 심지어 공기청정기를 잡고 일어선다. 끙차끙차 하며 일어선 우리 딸은 몇 번 넘어져 머리를 찧은 뒤부터는 아주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의자를 잡고 일어서서 잠시 버티다 살살 엉덩이를 바닥에 내려놓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분유를 타 주는 기계가 분유를 타는 소리가 들리면 저 문 안쪽에서 분유를 달라며 후어후어! 하며 소리를 낸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엄마와 아빠를 찾아 안전문에 매달려 또 으어아! 우어아! 하고 소리를 낸다. 설영이가 안아달라고 문에 매달려 소리를 지르는 통에 정작 방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도 아주 귀여운 일이다. 최근 다양한 소리를 내는 재미에 들린 설영이가 돌고래 소리를 내고, 엄마와 아빠를 보며 기뻐 웃으며 어깨에 고개를 폭 숙이며 까르르 웃는 딸을 보는 것도 너무너무 귀여운 일이다. 아기 의자에 앉혀 이유식을 먹이기 위해 턱받이를 두르고 아기 새처럼 입을 벌려 밥을 먹는 것도, 옴뇸뇸 하며 물을 마시는 것도, 아침에 일어나 엄마와 아빠를 깨우며 소리를 내는 것도, 자기 싫어서 방을 뒹굴다 밀려오는 잠을 참지 못해 이윽고 잠드는 것도, 기저귀를 하지 않은 채 방을 질주하는 엉덩이를 보는 것도, 머리숱이 부족해 민들레처럼 하늘하늘 하늘로 비죽 솟은 머리조차도 너무 귀엽다. 나에게는 내 딸이 가장 귀엽고 가장 사랑스럽다. 내 아이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행동이 어느 것이 문제이고, 어떤 행동을 교정해 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린아이에게는 그때만 나는 고소한 냄새가 있다. 밤에 잠을 자는 아이의 옆에 붙어 그 냄새를 맡는 걸 좋아한다. 설영이를 안고도 킁킁거리며 설영이의 냄새를 맡는다. 몇 년만 지나도 지금의 아기 냄새는 나지 않을 것이다. 사진과 영상처럼 찍어 놓을 수도 없고, 손발처럼 조형물을 만들어 놓을 수도 없는 이 냄새를 기억에 남겨두고 싶다. 설영이가 언제까지 나에게 이렇게 안길 수 있을까? 몇 년이 지나면 이제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아빠를 잡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거기서 시간이 더 지나면 나는 영원히 설영이를 목욕시키는 체험을 할 수 없다. 아빠를 너무 좋아하고 아빠에게 안겨있는 게 가장 원하는 일인 지금의 설영이를 잘 담아두고 싶다. 태어난 지 243일이 된 우리 설영이는 그 사이 3.19kg에서 8kg이 되었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더니 이제는 곧잘 일어서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어색해 낯을 가리는 시기도 몇 달 지나면 끝난다. 낯을 가리는 건 익숙한 사람을 알아보고 엄마와 아빠에 대한 애착이 형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는 설영이는 점차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고 빠르게 변화한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또 다른 부모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만 지금 온전히 엄마와 아빠를 찾고 의지하는 설영이를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몇 주 전 아내와 진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만약 설영이가 살고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만약 설영이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내가 세상에 있었던 흔적이 모두 사라진다 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설영이만 잘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되어도,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육아에 있어서 책임감은 필수지만, 육아를 하며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책임감이 아닌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이다. 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오늘의 내 아이가 내일이 되면 오늘의 모습이 사라질 수 있으니 자그마한 흔적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오늘을 최대한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것, 자라는 게 기쁘지만 마치 그 '자람'이 오늘의 설영이가 지워지는 것만 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아이를 최대한으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어떻게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아이 외에 다른 것을 마음에 담아둘 수 있을까? 그렇게 내 세계는 온통 너의 모든 순간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