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임신한 후 혼자 저녁에 단순히 책을 읽으러 카페를 온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장래 희망은 아빠였다>의 원고를 쓰러 다녀온 적은 몇 번 있지만 그나마도 임신 후반부에는 주로 집에서 원고를 했다. 광복절인 오늘 밤은 정말 오랜만에 그냥 책을 읽으러 설영이가 자고 육아가 모두 끝난 밤에 카페에 왔다.
올해는 3월 이후 도서 목록을 올리지 않고 있다. 올리기 부끄러울 만큼 적게 읽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만 짧게 서머리하는 데 2024년 8월 현재 19권을 읽었다. 월평균 2.5권 정도이니 원래 한 달에 7~8권 정도를 읽었으니 비교하면 아주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영화를 본 기록은 아예 없다. 어차피 몇 개 안 되니까 별 의미가 없다. 임신과 출산 후 나의 삶은 완전히 변화했다. 늘 쓸 거리가 많아 정리하고 가지를 쳐내야만 했던 나의 글감은 육아 외에는 사라졌다. 그나마도 글을 쓰는 게 쉽지 않나 브런치 스토리에 매주 일요일 <설영에게> 연재 글을 만들었다. 나의 좌우명도 바뀌었다. 바로 ‘무엇이든 해보자’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육아 때문에 정신없고 힘든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다만 아빠의 육아에 대한 관념과 실행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육아를 등한시하는 아빠들이 많으니 내가 그를 너무 의식해 너무 육아에 몰입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봐야 퇴근 후 시간과 주말 정도가 최선이니 가능하면 온 마음을 다하고 싶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밤에 홀로 카페에 와서 느낀 건 내가 육아 외 글을 쓰지 못한 건 장소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직장과 집, 그리고 주말의 산책이 내가 다니는 유일한 장소이니 당연히 육아 외에 생각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 밖에 책을 읽지 못하더라도 장소가 구분되어 있으면 좀 더 다르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왜 잊고 있었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건 시간이 기니까 멀리 봐야 된다는 말이었다. 사실 설영이를 키우는 시간은 한참 많이 남았다. 엄마와 아빠의 물리적 손길이 필요한 시간들은 시간이 지나면 줄어든다. 그래서 그동안 가능한 한 많이 몰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몰입하고 있다. 나에게 있는 에너지를 탈탈 털어서 아이를 키우는 기분이다. 하지만 공간이 하나 추가되는 것만으로도 내가 나로서 좀 더 잘 기능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기능이 우리 세 사람의 삶을 더 괜찮게 만들어준다. 일과 육아에만 몰입하다가는 그 외의 영역에서 무감한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다. 변화되는 삶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건 단지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 '세상' 속에서 내가 '하나의 세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각자의 세상'은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타자의 세상을 바라보며 지낼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해보는 것'은 바로 그런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