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로 설영이의 첫 대학병원 진료를 갔다. 진료를 예약한 지 약 한 달 반 만이었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성모병원만 다녔던 나는 세브란스가 처음이었다. 2시 진료를 앞두고 할 게 많았다. 설영이 수유 시간과 낮잠 시간 등을 맞추는 건 200일이 지났어도 여전히 어려웠다. 처음 가는 병원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본관 주차장에서 어린이 병원으로는 얼마나 걸릴지, 수납을 하고 신체 계측을 하고 진료실로 이동은 어떻게 되는지, 아기띠만 가지고 가도 되는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동네 병원보다 익숙한 삼성서울병원에 다닐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막상 설영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다니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대학병원은 아무리 다녀도 익숙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다닌 삼성병원, 그중에서도 암 병동은 지금도 훤하다. 병원에 가면 떠오르는 뇌리에 박힌 냄새가 있다. 단순히 소독약 냄새가 아닌 미묘한 냄새, 색으로 따지면 짙푸른 남색에 가까운 냄새라고 해야 할까? 삼성병원에 들어가면 어디에서나 그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많은 기억을 되돌린다. 혈액암 병동 앞의 광경과 교수실, 그와 조금 달랐던 비뇨기과의 풍경과 친절하지만, 무심한 간호사와 의사들, 항암 병동 특유의 사람을 차단한 사람들과 희망을 노력하는 사람들, 수술 병동 특유의 밝고 명랑 쾌활한 분위기의 대조가 생각난다. 그렇게 떠오른 기억들이 나를 괴롭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인생에서 강렬한 기억 중 하나이기 때문에 잊히지 않을 뿐이다. 이제 갈 일 없는 삼성 병원이 그리워지지는 않는다. 마치 전역을 한 부대처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다시금 기억이 끄집어내질 뿐이다.
태어난 지 200일이 조금 넘은 우리 딸이 처음으로 대학병원에 간다. 진료를 준비하며 선배 환자랍시고 아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2시 진료니 1시 30분까지 도착해도 생각보다 여유가 있을 거라는 둥, 어차피 대기 시간이 길어서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둥, 접수와 동시에 수납을 하고 진료를 본 다음 다시 수납을 하는 걸로 시스템이 바뀌어 귀찮다는 둥 의미 없는 말들을 한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나의 말을 어떻게 들었을까? 사실 그냥 흘려들었을 것이다. 설영이의 진료와 상관이 없는 말이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설영이의 진료였다. 동네 소아과와 홍대 피부과, 도화동 소아 피부과를 전전하며 결국 도착한 세브란스 진료는 우리에게 상징성이 있었다. 너무 멀리 돌아온 게 아닌가 후회하기도 했었다. 특히 투약을 담당하고 나보다 더 긴 시간 아이를 돌보는 아내의 마음은 또 달랐을 것이다. 7등급이라 하더라도 아이에게 매일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른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의사들이 아무리 "7등급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요, 약을 바르는 걸 무서워하시면 안 돼요."라 하더라도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7등급인 약만 있는 게 아니고, 발진이 심한 부위에 바르는 약은 등급이 꽤 높기도 해서 늘 마음이 좋지 않다. 때문에 나보다 아내의 마음이 속상할 게 분명하다.
어떻게 해도 설영이의 아토피가 내 탓이라는 생각을 벗어날 수가 없다. 친구들은 유전을 따지기는 너무 이르다고 하지만 사실 비염, 천식, 아토피는 유전 영향이 매우 크다. 그래서 진료 설문에도 부모의 알레르기 여부 등을 체크하는 항목이 있다. 물론 아토피를 앓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고 흔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많은 아이가 아토피를 앓았다는 걸 깨닫게 된 건, 그 부모들이 모두 나에게 본인들의 속상함을 저마다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설영이의 주 호발 부위가 볼과 입 아래쪽이라 더욱 그럴까? 설영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자주 속상하다. 그럴 때마다 의사가 말한 '아이의 질환이 나아질 두 돌까지'의 기간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는 결혼할 사람이 생기기 전부터 나의 병력들로 인해 아이가 아팠을 때의 상황을 두려워했다. 그렇게까지 치명적이지 않았지만 살면서 꽤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나의 경험을 유사하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두 번의 암 투병과 이제는 어느 정도 누그러져 일상을 함께하는 불안장애도 물론 힘들었지만 살면서 나를 가장 많이 괴롭힌 건 다름 아닌 천식이었다. 불편하지만 티가 잘 나지 않는 천식과 같은 만성 질환은 특히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가 가장 심했다. '천식만 없었어도 군대에서 그렇게까지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을 텐데' 와 같은 생각을 종종 했다. 환자가 아닌 환자의 삶 같은 건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으며 자라는 거라지만, 그것 말고 다른 형태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테니 굳이 이 아픈 경험을 통해 성숙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설영이는 침을 많이 흘린다. 본래 침을 많이 흘리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설영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입을 더 자주 벌리고 있다. 이유식을 하는 지금은 어느 정도 침을 삼키는 방법을 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침을 많이 흘린다. 돌이 지난 아이를 키우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돌 즈음이 되면 확실히 침을 덜 흘린다고 하니 그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토피인 설영이에게 중요한 건 공간의 적절한 온도와 습도이고, 하루에 두 번 약을 발라 증상이 발현되지 않도록 관리해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부분은 침을 계속 흘려 약을 제대로 바를 수 없어 약이 닦이는 입 주위다. 도화동의 소아 피부과 선생님도 이 대목에서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이번에 진료를 본 세브란스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교수는 설영이의 피부를 보고 다행히 얼굴 외 다른 부위는 괜찮다 하셨고, 센 약을 썼다 하더라도 침 때문에 닦여서 피부가 얇아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설영이가 가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다행이었다. 세브란스에서는 설영이의 피부를 침으로 인한 균의 작용 등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늘 사용하는 7등급 스테로이드 약 락티케어 1%와 진균제를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침 때문에 약이 제대로 발리지 않고 침독으로 인해 피부가 상하는 것은 약을 바르고 바셀린으로 덮어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피검사를 통해 알레르기 검사를 하고 다음 달에 다시 진료를 잡았다. 그렇게 진료가 끝났다. 그리고 진료를 받는 동안 겨우 잡은 평정심은 설영이의 피검사로 채혈할 때 무너졌다. 별것도 아닌 채혈이 왜 그렇게 슬픈지, 아파서 악을 쓰며 우는 설영이를 보는 게 너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채혈이나 상황에 대한 불만이 전혀 아니었다. 간호사는 아가들의 채혈에 굉장히 능숙한 베테랑이었다. 모든 걸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설영이가 줄곧 울었다. 무언가 불편하고 힘들어서 우는 설영이를 보다 철없이 나도 같이 울었다.
앞으로 오랫동안 다닐 세브란스 어린이 병원에는 정말 다양한 환자들이 있었다. 그 많고 넓은 공간 속에서 아이를 데리고 진료를 온 부모들은 다들 다른 귀여운 아가들을 보며 서로 사랑스러움을 참을 수 없는 듯 웃었다. 어린이 병원은 따뜻하고 다정한 곳이었다. 세브란스 어린이 병원에서는 아직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삼성병원이 익숙해진 것처럼 세브란스도 아무렇지 않게 익숙해질까? 시간이 지나면 나는 나의 투병으로 점철된 생활과 아이의 치료를 분리할 수 있을까? 설영이가 두 돌이 지나도 아토피를 앓게 될지 어떨지 아직은 모르지만 내가 서울삼성병원과 강남성모병원, 구로의 연세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 단지 익숙해진 것처럼 설영이도 아무렇지 않게 생활의 일부가 되어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사실 투병 경험보다 중요한 건 살아가며 자신의 쓸모를 깨닫는 일이다. 그걸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나도 지금과 조금 더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우리 담당 의사인 세브란스 어린이 병원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김경원 교수는 아토피 피부염은 호전됐다 악화됐다를 반복하며 서서히 나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만성 질환인 아토피 피부염의 치료에서 부모가 기억해야 하는 게 '실망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소아 천식 80~90%는 알레르기가 만성 염증 유발… 아토피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관리해야 해요. 2021.02.26.> 이제 설영이의 인생이 겨우 한 발을 디뎠다. 아니, 앉는 것도 겨우 하는 우리 딸은 아직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부모인 내가 나의 과거력과 질환에 잡아먹혀서는 안 된다. 앞으로 겪을 좋고 나쁜 일들이 너무나 많다. 설영이는 울었던 시간이 무색하게 세상 무엇보다 환하게 웃었다. 제대로 웃지 못하는 건 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