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상념

대화와 공감

by 한승훈

2014.07.10


누구나 자신의 말에 공감을 바란다. 그리고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말에 어느 정도의 공감을 하고, 공감을 하지 않더라도 같은 맥락에서 반론을 제기해주기를 바라는 법이다. 상대방이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맥락 안에서 나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대화라는 것은 나와 상대방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무엇보다 맨 윗줄에 쓴 것처럼 "누구나 자신의 말에 공감을 바라기 때문에" 일단 상대방의 말보다는 나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사실 나와 상관이 없으니 공감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애초에 상대의 생각을 모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해와 배려다. 어찌되든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배려하면서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을 적당한 선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친구 사이에도 상처받을 말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친한 사이에 말을 막 하게 되면 상대방이 그 말에 상처를 받아도 "나는 그 말이 기분 나쁘다."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면 "그 정도의 말은 해도 괜찮은 것"이 되어 버리고 그 집단 내에서 "해도 되는 말 "로 정형화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그 말이 기분 나쁘다고 말을 하면 정작 본인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객관적으로 그 말이 "기분 나쁜 말 "이라는 것은 전혀 소용이 없다 이미 그 집단에서 그 말은 "해도 괜찮은 말 "이니까.


그래서 나는 상대방의 말이 기분 나쁘면 그 자리에서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 지금 너 말이 기분 나쁘다."라고 하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있고, 조심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 과정을 거쳐 더 친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고 후회해본 적은 없으니까 일단은 내 행동이 맞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는 살면서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에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기보다는 "나의 말을 잘 들어주고 적당히 리액션을 해주는 사람" 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그러한 사실이 많이 짜증이 났었는데, 요즘에는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소통의 방식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상대방이 생각하는 방식이나 추구하는 가치 같은 것들을 알 수 있으니 결국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상대는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뭐 그건 어쩔 수 없다.


당연하지만 나도 대화와 공감을 바란다. 그리고 지금 글을 적는 이 블로그는 나에게 대화의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이 글을 얼마나 보는지도 모르고, 누군가 특정 대상에게 말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래도 나의 삶에 있어서 이 블로그는 중요한 대화 창구 중 하나이다. 재미있는 것을 블로그에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은 싫은데, 그렇다고 또 사람이 오지 않으면 그건 그거대로 또 싫을 것 같다. 역시 대화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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