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4
나는 요즘 남발되고 있는 소통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런데 지금 와있는 사회복지 대회의 주제가 바로 소통이다. 지금 강의를 하고 있는 강사가 의사소통법과 오해하지 않는 대화법을 알려주고 지역사회와 소통한 것이라고 예시를 들어주는데 보아하니 주로 대회 참여나 봉사활동을 한 사진이다. 그게 무슨 소통인가, 소통을 하고 있다는 자기최면이지.
물론 의사소통법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상대에게 오해하지 않고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이나 상대의 의견을 잘 듣는 방법은 당연히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스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대방의 의견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이다. 제대로 알아듣는다고 해서 상대와 소통하고 진심으로 대해준다는 보장은 없다. 상대방이 얼마만큼 나를 위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내가 얼마나 너를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소통을 가장한 대답의 강요가 넘쳐난다. 내가 이렇게 노력을 하는데 너도 나에게 이만큼의 대답을 해줘야지! 라는 것이다. 이는 모두에게 노이즈이자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단순히 봉사활동을 하거나 대회에 참여하고 간담회를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가? 그러한 자리에서는 해당 기관이나 집단, 개인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준비된 자리에서는 준비된 이야기만 하게 되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소통을 한다고 해도 그 모든 팔로워는 모두 허수다. SNS는 그 간편한 방식만큼이나 가벼운 인간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SNS의 사용자는 모두 본인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이야기만을 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준다. 당신이 좋아하는 '소통'을 위한 중요한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SNS는 얼핏 보기에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듯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며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도구가 아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SNS의 쉬운 접근법은 사용자로 하여금 그만큼 쉽고 책임감 없는 말을 내뱉게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짜 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상대에게 자신의 분명한 목적과 진심을 보여주고 내가 너를 위해 이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다. 라는 것을 꾸준히 보여주어야만 한다. 차라리 기관의 홈페이지에 지역사회나 주변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게시판을 활발히 운영하거나 공청회를 꾸준히 열어 그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이 실제로 반영되는 것을 보여줘라, 그러면 그때부터는 상대방도 당신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은 상대방이 어느 정도로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지만 자신을 보여준다. 특히 요즘처럼 서로 믿기 힘든 시대라면 더욱 그렇다. 소통이 그렇게 쉬운 것이었다면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왜 이렇게 많이 벌어지겠는가?
요즘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진심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방법이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