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상념

작위적인 감성과 집단감성의 불편함

by 한승훈

2014.10.07


글이나 그림,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음악은 특히 만드는 사람의 감성의 소모가 큰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감성을 다 사용했을 때에는 분명히 티가 나게 된다. 많은 가수들이 형편없는 2집을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는데, 이러다 보면 결국에는 작위적인 감성을 가진 노래들이 나오고 듣는 사람은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아마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굉장히 많겠지만 나는 김동률이 그러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김동률 앨범은 전람회와 카니발 그리고 김동률 솔로 앨범 1,2,3집까지는 굉장히 좋았지만 그 이후의 앨범은 모두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노래의 형식과 보컬의 방식, 노래를 풀어가는 스타일, 듣는 이의 감성을 최고조로 올리는 방법마저도 변함이 없다. 4집부터 6집까지의 반복은 듣는 이를 지치게 했고 나는 더 이상 김동률의 이야기에 감흥이 없다.


나의 이러한 이야기에 동조한 친구는 딱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 함께 김동률의 팬이었고,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내가 변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보고, 듣는 이의 감성을 작위적으로 자아내는 것들을 싫어한다. 지난 8월, 내가 악평을 쏟아 놓은 비긴 어게인에 대한 감상도 같은 종류다. 이 영화가 왜 불편하냐고 묻는다면 너무나 의도된 방식으로 관객의 호응을 끌어낸 것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만남, 이야기의 흐름, 노래의 스타일과 대사들까지 너무나 의도된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자연스러운 감성을 끌어내는 영화인 척을 하고 있고, 심지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현실에 의도된 것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본인이 본인 스스로를 디스 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이게 뭔가... 하고 사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나마 저기 쓴 리뷰글은 대부분이 다 좋은 평을 해서 욕먹기 싫어서 나름대로 좋게 포장해서 쓴 거다.


의도된 이야기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스스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반대된 방식으로 제작, 연출되었고 '그러한 영화가 아닌 척' 하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흔히 말하는 최루성 영화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슬퍼하고 이 부분에서 울어야지, 하고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연출자의 의도가 너무나 눈에 띄게 나타나서 감흥이 없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울리는 영화나 드라마가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슬퍼지거나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와 눈물을 자아내는 작품들은 정말 훌륭하지만 눈물을 흘리고자 하는 의도된 상황을 만들어 관객을 울리는 작품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다.


사회복지의 홍보 방식도 그렇다. 일부 재단(특히 아동 관련 재단)에서는 특정 대상자를 전면에 내세워 이러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세요, 라고 하는 광고를 만들어 놓는데, 사업의 우수성이나 어떠한 사람에게 혜택이 가는지와 같은 설명 보다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광고가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만드는 광고다. 물론 그 사람의 현실을 보여주고 그 영상으로 인하여 이러한 사람들이 이렇게 도움을 받습니다. 라는 광고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재단의 재정적 안정을 위하여 클라이언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은 대상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중요한 것은 이미지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저러한 것들로 홍보를 하겠지, 특히 사회복지는 재단의 이미지가 많은 것을 좌우하는데,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와 그 재단이 실시하는 사업에 차이가 있을 때 그 후폭풍은 사회복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은 내가 나왔을 때부터 주변에 꾸준히 디스 하는 노래인데, 이 노래는 정말 굉장히 불편하다. 카니발이 불렀을 때보다 인순이가 불렀을 때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좋아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나는 인순이가 말하고자 하는 거위의 꿈이 불편하다. 같은 가사들을 작위적으로 "그래 너는 할 수 있어! 꿈을 포기하지 마!"라는 이야기들 의도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풀어나간 것이 그렇다.


분명히 누군가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겠지만 나는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나와 친하지 않은 누군가가 쉬고 싶은 나의 등을 억지로 떠밀면서 "자 이제 너의 꿈을 찾아 떠나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다. 나는 이 노래가 작위적인 노래의 가장 대표적인 곡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집단 감성이 사회를 좌우하는 나라이다. 어떠한 사건이 생기면 사람들은 한꺼번에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모두가 그것에 대한 성토를 한다.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은 '다구리'를 맞고 다른 사람이 아닌 틀린 사람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몇몇의 사람이 "그때 그건 좀 심했지"라고 반성이 아닌 반성을 한다.


물론 그 당사자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없다. 이는 진중권의 디워 사건이나 금 모으기 운동, 신문선의 스위스 해설 사건 등을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집단 감성은 모든 이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분명히 누군가를 피해자로 만든다. 그리고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집단을 조작하는 작위적이고 조직적인 감성들이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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