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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Mar 31. 2016

부족해야 정이 간다

2015.01.13


  최근 가장 친한 친구가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그 친구의 헤어진 남자친구는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이 상황 판단을 잘하고 주관이 뚜렷하며 감정 몰입이 덜해서 항상 자신의 모습을 항상 지켜가는 그런 사람이었죠.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의 모습은 제가 바라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조금 더 확대된 듯한 사람이기도 했고요. 저는 제 자신이 항상 이성적이기를 바라고 제가 바라는 저의 모습을 언제나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그런 모습을 실제로 많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저는 되게 계획적이고 성실하고 꼼꼼하면서 많은 것들을 제 속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의 헤어진 남자친구가 헤어지고 나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의 반 정도도 안 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 이 사람도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서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든 것이 아니라 안타깝기도 하고, 더 사람으로 저에게 다가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을 새롭게 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제가 자주 듣고, 최근에 많이 듣는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1월 12일 일기에도 쓴 것처럼 "자신을 너무 쥐고 있지 말고 좀 놓아라."라는 말이나 "한번 취해도 보고 아무 생각하지 말고 놀기도 해봐", "오빠는 누구를 정말 열심히 좋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 "너는 사실 외롭지도 않고 되게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 "다 놓고 마음 편하게 해보기도 해봐"라는 이야기들입니다.


  이 이야기들을 꾸준히 들었음에도 사실 어떻게 하라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저는 계획적이고 하나씩 다 파악하면서 하는 게 마음 편하고 좋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의 일에 대입해보니 생각을 꿰뚫는 무언가가 생기더군요. 결국 제 주변 사람들도 제가 너무 여러 가지를 파악하고 이성적으로 하려다 보니 흥밋거리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서 옆에서 도와주거나 챙겨줄게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저를 보거나 생각할 때 이 사람에게는 이러한 여유나 내가 파고들 틈이 없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할까요.


  그러고 보면 상대방이 귀엽다거나 정이 간다는 모습을 보일 때는 무언가 부족하고 챙겨주고 싶고, 내가 필요하겠다는 느낌이 들 때니까요. "이 사람에게는 내가 필요하겠구나, 이 사람은 내가 있으면 더 좋은 사람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에게 더욱 정이 가고 생각을 더 하게 된다는 것이 지금까지 제가 닿은 사고의 과정입니다.


  저는 제가 바라는 항상 이성적이고 상황을 잘 파악하며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사람, 이라는 모습은 좋은 냄새를 풍기는 사람은 될 수 있겠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거나 상대방이 나를 생각할 때 정이 들 수 있는 사람은 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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