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7
대학을 다닐 때 지역 내 가톨릭 학생회 연합 동아리를 했었는데, 그 동아리의 성격은 전통적으로 가톨릭 동아리의 색보다 운동권 동아리의 색이 더 짙었다. 자연스럽게 선배들의 성향도 왼쪽에 훨씬 더 가까웠고 실제로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었다.
비록 지금의 나는 양비론자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대학시절에는 근현대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생이 접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한 인식과 근현대사에 대한 편협한 책과 자료를 접하면서 양비론자인 현재와 달리 지금보다 더 왼쪽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왼쪽의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나 운동권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더 좁은 시선으로 좁은 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그러한 선배들의 활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동아리 회장을 하면서는 운동권 선배들의 전통과 활동, 지역 내 단체와의 교류도 모두 끊어버리고 가톨릭 동아리로서의 모습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나는 본래 선배들이나 형들이 뭐라고 말을 한다고 해도 나의 주관대로 진행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선배들이 그러한 지시를 하고 불만을 표할 만큼 편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도 아니었다. 난 원래 까칠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내가 그리는 가톨릭 동아리의 모습은 그들이 바라는 모습과는 많이 달랐고, 무엇보다 시대가 바라는 가톨릭 동아리의 모습이 아니었으며. 나는 그것들을 바로잡고 싶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좁고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당시의 말과 행동들이 모두 맞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근현대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접하는 환경이나 정보는 한정적이었고, 물론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 당시에는 더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최소한의 신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 것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것을 구분하는 머리도, 눈도 신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객관적으로 서술이 되어 있지 않으며 특정한 누군가가 어떠한 목적과 방향성을 위하여 작성하는 자료들일 뿐이다. 누군가는 정보를 얻기 위해 자료를 만들고 취합하지만 그러한 자료들조차도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사실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데 더 역점을 둔다.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 틀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친구의 이사를 도우면서 그 친구의 이사를 돕던 그 친구의 선배라는 사람과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다. 그 사람이 했던 말들의 요는 이렇다. “그렇게 모두 비난하면 안 된다, 이쪽이면 이쪽, 저쪽이면 저쪽, 그러한 한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야지 너처럼 모두를 비난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이도 저도 될 수 없다.” 물론 지금도 이 사람의 말이 맞다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어느 쪽이든 자신의 마음이 완벽하게 들 수는 없고, “이것은 이러한 부분이 나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는 사실 말이다.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들 설득한 만한 신념도 없고 생각도 없으며, 정보를 선택하고 고르는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들이 많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을 설득할 신념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든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 자체로 부럽다. 자신의 태도나 명확한 방향성이 있는 사람은 흔들림이 적고 특정한 상황에 고민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논리를 펼쳐나가며 무엇보다 중요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나는 그저 사건과 현상에 대한 사실을 알고 싶을 뿐 신념도, 확신도, 그에 따른 의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