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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Aug 03. 2016

규정과 분류

2016.01.06


  인간은 명확하고 뚜렷하게 규정짓고 분류하는 것을 좋아한다. 넓고 자유로운 선택지가 있는 것보다는 정해진 것들 안에서 선택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여 경계를 긋고 몇 가지 종류로 정리하고 싶어 한다.


  책을 읽으면서 보는 인문학 도서들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서들을 보아도 그렇다. 특정한 이론을 세우고 주장을 하기까지 합쳐있는 것을 파헤쳐 나누고 종류를 정하여 선택하여 이론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이론을 반박하는 이론이 나오고, 그 이론과 지난 이론을 합쳐서 만든 이론이 등장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 그 모든 이론을 부정하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고 위의 과정을 반복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 원리를 정말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사를 보아도 그렇다. 사물을 디테일하고 정교하게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사실주의에서 사물의 특징을 강조하여 빛과 색으로 표현하는 인상주의, 작가가 생각하는 특징을 살리는 후기 인상주의로의 변화, 그 뒤로 생겨난 추상화로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작가들은 그저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변화했을 뿐이다. 그것을 우리는 굳이 정리를 해서 나누어놓고 시대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나누어 놓은 이론과 시대, 작품에 따라 자신의 선호를 정하고 나머지 것들은 저 멀리 치워버린다. 이것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자신의 편을 정하고 나머지를 반대파로 규정하고 자신과 같은 무리를 구성한다. 사회에서도 나와 같은 편을 짝짓고 나머지를 이기고 누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규정되고 분류된다. 그리고 그에 따라 나와 같은 편, 나와 다른 편이 나뉜다.


  사람은 자신이 인식하는 범위까지를 자신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명확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스스로를 규정시키고 그 안에서 모습을 구축한다. 그 후 구축한 모습에 따라 스스로의 행동양식과 생각을 정하고, 주장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자신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앞뒤가 맞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존재한다. "나는 분명히 이런 사람인데, 왜 이런 행동을 내가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나는 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경계를 정하고 규정을 짓고 분류를 나누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자신이 생각한 그룹과 다른 종류의 사람을 배제하거나 부정하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부정은 결국 스스로를 옥죄는 올가미로 돌아온다. 스스로가 만든 경계를 없애고 너와 내가 하나의 객체로 존재할 때 "나의 불안"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경계선은 반드시 반대의 공간을 구성한다. 즉, 반대의 공간이 없이는 나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고 만드는 것들은 모두 경계의 반대편이 있기 때문에 생긴다. 상호 보완하는 하나의 존재라는 이야기이다. 언제나 평화롭거나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다. 경계를 긋고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불행해짐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나눈 경계의 저편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이 있고 고통이 있기 때문에 행복이 있다. 고통과 행복을 구분 지으면 우리는 고난 속에 살게 된다.


  또한 분류되어 지지 않는 것들을 분류하다 보면 나누어지지 않는 것들이 생긴다. 나누어지지 않는 것을 나누려는 행동으로 사물과 존재에 뒤틀림이 만들어진다. 경계를 그어놓은 모양은 실제와 다를 수밖에 없다. 경계를 만듦으로써 사물과 현상이 바뀌고 잘못된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을 독립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오류가 생기기 마련이다. 경계는 적대적인 태도를 만들고, 적대적 태도는 스스로를 피곤하게 할 뿐 아니라 경계 밖의 타인에 대해 가지지 않아도 될 공격성을 갖게 만든다. 경계는 모든 갈등의 근원이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사실 나는 규정과 분류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나에게 있어 분류와 규정은 방어기제로 사용되어 나를 보호하고 안정감을 제공한다. 나와 반대되고 다른 종류로 분류된 사람이 생긴다면, 그 존재는 더 이상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 존재는 나와 다르니 나를 이해할 수 없고, 결국 그 존재가 하는 말이나 행동은 나에게 의미가 없게 된다. 그리고 나는 상처받지 않고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종국에는 경계가 없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언젠가는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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