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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Aug 11. 2016

사람 보는 눈이 없는 사람

2016.01.15


  나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뒤통수를 맞을 때도 많고, 좋게 보았던 사람들이 나중에 본색을 보인다던가 심지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를 믿으라고 했던 사람들이 나를 후려치는 경우도 있다. 이것뿐 아니라 나를 이용하고 써먹으려는 사람들도 많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다. 매년 벌어지는 일이랄까. 아무튼 벌써 33살이 되었는데 여전히 나는 사람 보는 눈을 기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나는 사람들을 잘 알아보지 못할까? 라는 생각을 하다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첫째로 나는 자신을 밝히는데 두려움이 없고 숨기는 것이 없다. 감추지 않고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페르소나를 사용하지 않으며 가식이 없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이것은 나를 이루는 가장 큰 특성 중 하나이고, 나의 심리와 행동의 근원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내가 가감 없는 사람이다 보니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자신의 모습을 감출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의심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에게 조건을 구하고 도움을 구하거나 나에게 어떠한 것을 이야기했을 때 나는 그 표면적인 이야기들을 다 믿는다. 상대가 굳이 나에게 자신을 꾸며서 이야기하거나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 보이도록 스스로를 꾸미고 감춘다.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이유로 가감 없는 나를 신기해한다. 그리고 때로는 감추지 않고 꾸미지 않는 나의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상대방의 그러한 반응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면 나는 굳이 감추고 싶지 않으니까 나의 이러한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을 위해 나의 모습을 꾸밀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어쨌든 나는 여전히 상대방이 페르소나를 쓰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 못하며, 여전히 의심이 없다.


  둘째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다양한 부분에 공감하고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그것은 오로지 타인의 이야기를 자양분 삼아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일 뿐, 타인을 평가하거나 타인을 분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나의 이러한 태도는 나와 대화하는 상대방에게 마음의 안정을 준다. 나는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잘 들어주고 이해를 해주며 설사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 대화 자체에 공감을 하고 나와 대화하는 상대를 비난하지 않는다. 타인이 모든 생각, 행동, 말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상대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판단하고 잣대를 두어 내치지 않는다.


  얼추 생각해보면 상당히 좋은 것 같아 보이지만 이는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이 각자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차피 그 사람이 책임져야 할 것들이니까 굳이 내가 비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스스로가 괜찮다고 판단한 것이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만약 문제가 된다면 스스로가 책임을 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해주는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이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가장 중요하며, 타인의 기준과 판단은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사고가 원인이다.


  셋째로 나는 타인과의 대화나,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자극들을 나에게 필요한 것들로 치환하여 생각한다. 바꾸어 말하면 타인, 그 자체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나에게 주는 자극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에너지를 주고 나에게 어떠한 요소로 작용하는가, 지금 이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나에게 어떠한 이야기로 다가오는가, 이 말과 행동은 어떠한 것인가, 라는 것들을 생각하며 받아들이니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한다. 나에게 있어 관심의 끝은 나 자신이고, 문제에 대한 판단도 나 자신이 하며, 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만이 의미를 가진다. 위에 쓴 것처럼 타인의 기준과 판단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쓴 것들을 정리해보면 결국 나는 타인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며, 기준점을 나에게 잡으니 타인을 잘 모르게 되고, 보편적인 기준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사람인데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의심조차 없는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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