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상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훈 Aug 30. 2016

엄마의 백내장

2016.01.20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다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머리가 왜 아플까"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출근을 한 후 일을 시작했는데, 아침 회의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머리가 아파 타이레놀을 한 알 꺼내 먹었다.


  그렇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채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즈음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수술 경과가 안 좋다 보니 우울증 비슷하게 된 것 같아. 아빠가 어제 좀 참았어야 되는데, 엄마가 계속 예민하게 나오니까 화를 내가지고... 병원에 좀 가봐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엄마는 대략 한 달 전인 12월 중순경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발병을 한지는 7~8년 정도가 되었는데, 병원에서 아직 수술할 시기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하게 된 것이다. 수술을 하는 날은 내가 연차를 내서 엄마를 돌봤고, 나는 엄마가 수술을 한 이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백내장이라는 건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질환이고 대부분 수술을 한 후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수술을 하고 병원에 다니며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엄마는 수술을 한눈에 염증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의 면역기능이 약해 수술을 한 부위에 염증이 생겼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이후로 엄마는 2시간, 4시간, 5시간마다 각각 넣으라는 안약을 매일 계산해가며 열심히 넣었다. 그렇게 엄마가 염증 치료를 받을 때에도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엄마가 밥을 덜 차리게 하려고 매일 밖에서 저녁을 먹고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서 엄마에게 오늘의 상태를 한마디 물어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신경 씀의 정도'를 보여주는 행위의 전부였다.


  헌데 어느 날부터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엄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나빠졌고, 엄마의 예민함도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나는 그때야 깨달았다. "아, 엄마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불안해하는구나." 


  사실 나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어릴 때부터 크고 작은 병을 앓아왔고 그 외의 삶의 위기들을 여러 번 넘겨왔기 때문에 몸의 통증이나 질환의 치료로 인한 불안감과 두려움 등을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한 일들에 일일이 반응을 하면 나 자신이 부서지고 남아있지 못할 테니 나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의식의 성장과정이 된 셈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불안감이나 두려움에 공감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적절한 대답을 해주는 것은 잘 하지만 그 사람이 얼마나 두렵고 불안할지에 대한 것들, 그러니까 상대방이 느끼는 불안감의 양은 잘 파악하지 못한다.


  그제야 부랴부랴 주말에 가족끼리 놀러 갈 계획을 세워 온천을 예약하고, 식당을 찾아보고, 아웃렛을 알아두는 등 가족의 분위기(= 엄마의 기분)를 띄울 수 있는 행위를 하며 엄마를 위로했다. 다행히 엄마는 진지한 걱정을 함께 하고 실제적인 대화를 하며 자신을 정리하는 것보다 평범하게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실제로 기분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며 상태가 좋아지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남편이 남편으로서 적절한 행위, 아들이 아들로서의 적절하고 모범적인 행위를 할 때 만족감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형도, 아버지도 엄마의 이러한 별것 아닌 요구를 맞춰주는 재주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해, 나라도 해야지.


  그렇게 아픈 머리를 이끌고 아버지에게, 형에게, 엄마에게 전화를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서울에 있는 유명한 안과들에 전화를 해서 오늘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엄마가 가던 병원에 진료 의뢰서를 써달라고 하여 서울성모병원의 안과에 진료 예약을 잡을 계획을 세웠다. 반차를 내서 점심을 먹고 퇴근을 한 후 엄마가 다니던 병원에 가서 진료 의뢰서를 받았다. 의사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환자를 대하며 차분하지만 명확하게 불쾌감을 표현했다. 


의사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염증은 거의 다 나았습니다.

2. 지금 눈이 나쁘게 보이는 것은 동공확장제를 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을 서서히 줄여 끊게 되면 이제 시력을 좋아질 것입니다.

3. 오늘부터 약을 세 개에서 두개로 줄일 건데 그러면 확실히 나아질 것입니다.

4. 하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못할 테니 진료 의뢰서를 써드리겠습니다 가서 진료를 받아 보십시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보기에는 그 의사가 하는 말이 다 맞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면역기능이 약해서 염증이 생겼다는 말에 기분이 상한 엄마는 이러한 의사의 말을 역시 의사가 말한 대로 믿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엄마가 걱정하는 것보다 더 걱정하며 계속 호들갑을 떨었다. 차의 스피커폰을 통하여 그 자리에서 서울성모병원에 전화를 해서 2월 1일에 진료예약을 하고 형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형과 함께 성모병원에 가도록, 형에게 적절한 역할을 배분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 형과는 사전에 미리 입을 맞춰 놓았다) 


  그리고 삼성동에 있는, 서울 유명 안과 중 유일하게 나를 뺀찌 놓지 않은 병원으로 출발했다. 운이 따라 주었는지, 도착한 그 병원은 훨씬 더 깔끔하고 시설이 좋았고, 심지어 의사도, 간호사도 더 미남 미녀였다. 굉장히 친절하고 스마트했던 삼성동 안과의사는 위의 엄마가 수술한 의사가 한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를 더 깔끔하고, 더 친절하고, 더 자상하게, 심지어 오랜 기간 치료를 받느라 수고한 엄마의 노고를 치하하는 이야기까지 빼놓지 않고 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지만 당연하게도 엄마는 안심했다.


  예컨대 실제 치료 능력이나 결과보다 가족의 공감을 얻고 신뢰할 수 있는 친절한 의사에게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 치료 과정이야 어떻든, 진행이 어떻게 되어가든 그저 안심할 수 있고 나의 괴로움을 알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었으니까. 


  일정과 계획을 끝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엄마가 기분이 나오진 틈을 타 아버지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의 소득에 끼워 넣으며 마지막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게 왜 생겼는지 이유를 알 수 없던 두통은 어느덧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흘려보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