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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Nov 06. 2016

'한공주'를 보고

2014.04.27     


  도가니 이후 사회고발 영화들이 종종 나오고 있지만 완성도가 높은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도가니도 영화적으로는 참으로 별로였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데 한공주는 정말로 잘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마음속까지 절절하게 다가오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느끼는 감정도 분노와는 다릅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분노와 좌절감 슬픔, 자괴감이 어우러진 감정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동네에 있는 CGV에서 밤 10시에 하는 것을 혼자서 보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자기가 가시방석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계속 봐야 하나라는 마음에 나갈까도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영화를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저도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이 글을 쓰는 저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나 영화를 보는 그 누구도 나는 여기에 속해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요, 포스터에도 나오고 영화의 첫 장면에도, 끝부분에도 나오듯이 공주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잘못한 게 없다는 공주의 말을 처음 부분에서부터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전학을 가는 도중 전 담임선생님은 공주에게 "잘잘못은 법원에서 가리는 거고 이 사건이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 교장선생님이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까지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저희가 '밀양 여중생 사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 되는 샘이니까요.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합니다. 그것이 딱히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 어머니와 경찰, 간호사와 이혼한 엄마,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공주의 고통에 공감해주지 않습니다. 또한 결정적인 부분에서 다른 사람은 그 자리를 피합니다. 가해자의 부모들이 찾아오고 학교에서 쫓겨난 공주를 조건 없이 좋아해 주던 학교의 친구도 공주가 겪은 일을 알고부터는 공주에게 어떠한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를 뿐 아니라 어떻게 말을 해서 자신의 책임이 되는 것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친구의 자살을 보고만 있었던 공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인격적으로 미성숙하고 삐뚤어져 있으며 죄의식이 부족하고 도덕적인 관심 또한 불완전하기 때문에 정말로 끔찍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릅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식이 똑바른 사람이어야 자신의 인생이 헛되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에 자식을 올바른 각도로 세우고 피해자를 잘못된 각도로 돌려버립니다.


  진실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힘이 없는 소수가 잘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 오늘의 사회입니다. 같은 의견을 가진 여러 명이 모인다는 것은 어떠한 것도 진실로 만들 수 있는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진실에 대한 정의를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알려주지만 사실상 객관적인 사실은 없는 샘입니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고장이나 틱틱 소리를 내던 선풍기는 영화의 끝부분에 가서야 그 잔인한 의미를 보이게 되는데, 그냥 고장이 난 선풍기구나.라고 보는 관객과 무심한 듯 고장 난 선풍기를 툭툭 치는 담임선생님은 역시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사실을 알기 전에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전등이 고장이 났음에도 고치지 않고 있던 공주는 이미 어긋난 친구들의 관계를 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던 남자아이 때문에 잔인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누구도 그 남자아이를 탓할 수 없다는 게 아주 처절하게 마음을 옥죄어옵니다.


  공주는 수영을 배워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자살시도로부터 살아남습니다. 감독은 자살시도로부터 살아난 공주를 보여주기 위해 응원하는 소리를 넣었다고 하지만 저는 응원소리가 아니라 비명에 가깝게 들었습니다. 비명이든 응원이든 그것도 공주를 위해 빛바랜 응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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