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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Nov 13. 2016

'스틸 엘리스'를 보고

2015.05.09     


  스틸 앨리스는 존경받는 언어학 교수로 살아오던 앨리스(줄리안 무어)가 유전성 원인을 가지고 있는 초로성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아 자신과 가족 모두 많은 혼란을 겪음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앨리스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추천해주신 분은 엊그제 센터에서 있었던 가족간담회에 오신 어르신의 보호자인 따님이신데, 영화가 참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하셔서 며칠뒤 바로 보러 갔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치매 어르신들께서 생활하시는 노인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직종의 특성상 치매에 관해 공부한 것도 (나름대로) 많고, 센터에서 실시되는 치매교육도 제가 진행하며 어르신들의 상태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며 보호자분들께도 알려드려야 하는 것이 많은 터라 치매에 대해 공부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임상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아무튼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 영화를 영화적인 의미로만 보는 것은 저에게 불가능했습니다. 극중에서 나오는 줄리안 무어의 행동의 변화가 인지기능의 변화 등이 자꾸 눈에 보였습니다. 아무튼 영화에서는 알츠하이머를 상당히 실제와 비슷하게 그렸고 초기에서 중기, 말기로 진행되어가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느끼는 행동이나 심리의 변화도 구체적으로 잘 그려주었습니다. 특히 영화에서 표현되는 초기치매는 치매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은 다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세밀한 부분의 표현을 잘 했습니다.


  앨리스는 굉장히 혼란스러울 텐데 생각보다 병을 잘 받아들이더군요. 특히 앨리스가 병의 진단명을 듣고 자식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나 자식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앨리스보다는 다른 가족들의 혼란이 더욱 큰 듯 한 모양이 그려졌습니다. 실제로는 환자 본인이 치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특히 앨리스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죠. 자신이 알츠하이머라고 잘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어떻게 앨리스가 알츠하이머일 수 있어? 말도 안돼"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핑크리본도 달아주고 존경받을 수 있으니까"(라는 대사였던 것 같습니다). 라는 말들은 사람들이 치매에 대해 가지는 인식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치매는 자신이 바라는 자신으로 죽을 수 없고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지 못할 뿐 아니라 내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을 무너져 내리게 하는, 종국에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아주 슬픈 질환입니다.


  가족들은 존경하는 어머니가 치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대하고자 합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갈등이 시작 되죠. 어머니를 위하고자 하는 마음은 같지만 서로의 기준이 다르고 생각과 행동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건 치매뿐 아니라 모든 노인성 질환에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모든 가족들이 신경을 써주는 것도 잠시뿐입니다. 치매 가족들에게 다가오는 현실의 무게란 그만큼 큽니다. 결국 죽을 사람은 죽는 것이고 살아야 하는 사람은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치매환자는 사실상의 걸림돌이 됩니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결국 우리는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사용하기를 바라죠. "치매환자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가족 중 이사람 뿐이다." 라는 말을 가족끼리, 또는 스스로에게 몇 번씩 되뇌며 죄책감을 흐리게 만듭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을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치매환자의 주 케어자 뿐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에서도 앨리스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이 앨리스로 존재하기를 바랍니다. 감독도 앨리스가 앨리스로 존재하기를 돕는 듯 비련과 슬픔으로 주인공을 바라보지 않고 앨리스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앨리스를 바라보는 줄리안 무어의 시선이 영화를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지요. 어찌 보면 담담하고 싱거운 듯한 영화의 연출은 앨리스가 앨리스로 존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앨리스는 케어자들이 흔히 말하는 '착한 치매'라는 것입니다. 치매 환자가 앨리스 정도의 행동증상만 보인다면 그건 축복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느끼는 케어의 부담도 영화에서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저 정도의 행동증상만 보이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특히 앨리스 같은 유전성, 초로성 알츠하이머는 행동증상이 더욱 심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스스로 빵에 잼을 바르고, 커피를 타고, 이를 닦고 걸음을 걷는데 전혀 이상이 없는 등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앨리스의 모습을 실제로 생각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럽지만 그것 또한 앨리스를 존중하기 위한 영화의 연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 몸의 일부분이 사라지는 기분이야" 로 시작되는 앨리스의 외침이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그저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로 바뀌기까지 얼마나 많은 괴로움과 번민의 시간이 있었을지 우리는 영화가 주는 담담한 시선 속에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신. 

1. 실제로 유전성 알츠하이머는 굉장히 드문 케이스 입니다. 하지만 유전성이라는 게 판명이 나면.. 그건 사실 답이 없습니다.

2. 치매약은 증상을 완화시켜주고 현재의 상태를 가능한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돕지만 치료제는 아닙니다.

3. 일찍 발병을 하거나 유전성인 경우는 치매의 진행 속도가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됩니다.

4. '치매'라는 병을 진단하는 자체가 사실 어렵습니다. MRI를 찍는다고 명확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MRI와 임상증상과 환자의 모습, 문항에 대한 검사결과를 종합해서 '치매' 라고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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