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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Dec 10. 2016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40년간 목수로 성실하게 일해온 다니엘은 심장병으로 의사에게 일을 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는다.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아내의 수발을 하며 살아온 다니엘은 그로 인해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나 복잡한 행정절차로 인해 질병 급여와 실업 급여를 신청하는 것조차 어렵다. 어렵게 신청한 질병 급여는 "일을 할 수 있으니 급여를 줄 수 없다."라며 다니엘을 탈락 시킨다. 일을 할 수 없으나 일을 할 수 있다는 판정을 받게 된 다니엘은 항소를 준비하지만 재판이 언제 잡힐지조차 알 수 없다.

  다니엘은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으로 기본 서류를 작성해야 하지만 그는 커서를 움직이기 위해 마우스를 모니터에 가져다 대는 사람이다. 그러한 그가 인터넷으로 실업 급여 신청서를 제대로 적성할 수 있을 리 없다. 다니엘의 실업급여 담당자는 다니엘에게 구직활동을 하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는 컴퓨터로 이력서를 쓸 줄도 모르고, 구직활동을 한 흔적을 남길 줄도 모른다. 다니엘은 실업급여의 기준을 채우기 위해 발품을 팔아 지역의 목공소와 회사에 이력서를 써내지만 그는 여전히 일을 할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있다. 누구보다 일을 하고 싶은 다니엘은 일을 할 수 없는 몸뚱이와 이력서를 가지고 일을 시켜달라 회사에 말해야 한다. 정작 정말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기를 들었을지라도 할지라도 그는 일을 할 수 없다. 심장병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질병 급여와 실업급여의 신청은 선택이 아닌 필수지만 그들은 다니엘에게 직업을 선택하라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으니 그에게 돈을 주지 않겠다 협박하고 규정과 원칙만을 따지며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을 내쫓는다. 생을 다루는 직접적인 문제는 선택이 될 수 없고, 선택할 수도 없다.

  이력서를 작성하는 법을 알려주는 강사는 커피가게에 8명의 일자리가 있는데 1,600명의 지원자가 있을 때  더 눈에 띄는 이력서를 써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하지만 사실 적은 자리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더 많은 일자리가 주어져야 하고, 그를 위해 분명한 노력과 대책이 필요함에도 그 방법은 강구되지 않는다. 싱글맘이 케이티도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고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나 사회의 테두리에서 보호받지 못한다. 케이티는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생필품 및 식품을 교환할 수 있는 바우처에는 여성의 필수품인 생리대조차 지급되지 않는다. 그녀의 아들은 제대로 된 곳에서 잠을 자지 못해 정신적으로 불안해졌고 그녀의 딸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한다. 상황에서 그녀는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정부도 복지정책도 아닌 바로 이웃인 평범한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이렇듯 삶의 시간 동안 선의를 보이며 평범하고 보편적으로 주변을 도왔다. 그가 한 행동들은 그다지 특별하거나 영웅적인 행위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하는 그러한 선의로서의 행위지만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나라의 정책은 그러한 보편으로서의 선의만도 못한 것이다. 이러한 다니엘이 보여주는 선의는 데이지의 대사처럼 서로에게 되돌아온다. "우릴 도와주셨죠? 저도 돕고 싶어요."

  한 명의 시민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렇듯 당연한 요구를 당연하게 말한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다니엘은 보편적인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평범하고도 보편적인 다니엘은 존중받고 인간으로서 대우받아야 한다. 노장 감독 켄 로치의 영화는 자신의 방법으로 연대하고 서로 엮어 강하게 묶여야 함을 역설한다. 켄 로치의 시선은 누구보다 따뜻하지만 날카로운 통찰력과 설득력을 가진다.

  다니엘이 정신이 나가버린 아내를 볼보며 만들었던 물고기 모빌처럼 그는 하루하루 항해한다. 바다는 잔잔할 때도 있고 거칠 때도 있다. 다만 배에는 길을 알 수 있는 항해도가 있어야 하며 바다에는 정박할 수 있는 항구가 있어야 한다. 그 항구와 밤바다를 비추어주는 등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항구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누구인가.

  이 영화는 올해 본 어떠한 영화보다 훌륭하며 필요하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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