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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ug 14. 2016

미술전시회 <이중섭 展> 후기

지친 거인의 꿈 

이중섭은 나 같은 미술 문외한도 비교적 잘 아는 대표적인 우리 화가다. 평범한 사람들이 미술교과서를 통해 알게 되는 몇몇 근대 화가들 중에서도 그는 가장 인상 깊은 작품(황소 연작과 같은)을 남긴 작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전시중인 이중섭전은 작가의 연대기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 유학시절, 부산 피난시절, 제주에서 보낸 일 년, 통영과 서울을 전전하며 가족을 그리다 죽음에 이르는 시기를 그의 주요작품과 유품, 아내나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 그에 관한 다큐멘타리 영상 등으로 채워 넣고 있다. 


1. “오늘은 종이가 다 떨어져서 한 장만 그려 보내요.”
.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작품들 대부분이 서양미술의 그것과는 달리 무척 소박하고 작은 크기로 제작된데다가 쓰인 색상도 무척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말년을 가족들과 떨어져 내내 가난과 그리움으로 허덕여야 했던 작가는 일본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 100여 통이 넘는 그림 편지를 보냈는데 변변한 종이 한 장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그림 편지도 보내지 못할 만큼 가난을 겪어야만 했었나보다. 그러니 물감이나 제대로 쓸 수 있었겠는가. 스케치가 대부분이고 황토색과 붉은 색 외에 딱히 기억나는 색이 없을 정도로 단순한 색조로 그려진 그림인데도 그 생동감과 붓의 힘이 느껴진다.

마티스를 연상케하는 구성. 투박하고 거친 붓질. 소박하고 정감있는 색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대한 그리움이 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담배 은박지에 새겨 넣은 그림을 보면 극도로 궁핍한 환경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작가의 열정과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의 중요한 소재들은 아이와 동물, 가족, 그리고 소나 닭 같은 가축이 대부분이다. 초기작부터 제주도나 부산에서 피란시기까지의 작품들에서는 마치 전래동화의 삽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면에 미소를 띤 벌거벗은 아이들이 물고기나 소, 게와 같은 동물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어지러운 선들을 따라 육체와 육체가 겹쳐 있고 사람과 동물이 서로 기댄다. 수탈의 시기였지만 서로 기대고 품어주는 우리 민족에 대한 그의 바람과 희망이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이중섭 작품에는 유독 아이들과 물고기가 많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그가 얼마나 평화와 풍요를 그리워했을까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2. “끝도 없이 상냥한 내 아름다운 천사여, 힘찬 포옹과 미칠 듯 뜨거운 키스를 받아주세요.”

52년 가족들을 일본 외가로 보내고 혼자 남은 이중섭은 그림을 그려 전시회도 열고 작품을 팔아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생각에 작업에 몰두한다. 멀리 떨어진 아내와 아이들은 그에게 늘 그리움의 원천이었다. 보고 싶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상황. 그는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 받는다. 그가 아내 이남덕에게 쓴 편지의 절절한 내용들이 눈물겹다. 그 어려운 시기를 혼자 헤쳐 나가며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보다 앞서 1전시실에는 그와 그의 아내가 연애시절 주고받던 그림엽서도 전시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엽서에 글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오로지 그림만으로 연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로맨티스트였나보다. 그러고 보니 생김새도 얼마나 멋있는지. 이미지만으로는 영화배우 박성웅을 닮았다고 할까.




3. “돌아오지 않는 강” 

그는 결국 서울에서 꿈에 그리던 개인전을 열고 작가로서 성공하는 듯 했으나 기쁨도 잠시 가족들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거식증에 걸리고 지병을 얻어 서울에서 40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가 통영을 떠나 서울 정동에서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낼 때의 작품들은 무척 비관적이다. 힘찬 필치의 황소도 피를 흘리며 고개를 숙인 채 쓰러져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절절해보였다. 그런 가운데도 크레파스에 유화를 덧그리는 방식의 실험을 계속한다. 결국 그는 <돌아오지 않는 강>이라는 그림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돌아오지 않는 강>은 흑과 백의 단순한 색으로만 구성되었다. 한 소년이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어머니(아내)를 기다리고 있고 멀리 머리에 짐을 진 여성이 귀가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소년은 어머니(아내)의 귀가를 못 본 눈치다. 그가 숨을 거두는 마지막까지 얼마나 아내를 그렸을지 짐작이 가는 그림이라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전달되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아이의 표정을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난다.


먼저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감동받아 눈물이 날 뻔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휴가 첫날 작심하고 간 전시회였다. 일전에 봤던 이쾌대전이나 근대화가전에서의 그림보다 더 짜임새 있고 감동적인 전시회였다.


뱀발>


해설을 들으러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피해다니는 건 곤혹스럽다. 시끄럽기도 하고 이들이 동선을 방해하기도 한다. 작품을 보고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는게 더 좋지 않을까.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할 것 같아 미리 준비해간 메모장. 이렇게 메모해뒀다가 집에와서 자료 찾아보면 해설 한번 듣는 것 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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