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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ug 14. 2016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후기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학적 시선

평생을 도시에서 살았다. 아주 어릴 적, 마을 한 가운데 우물이 있고 마당에는 닭들이 모이를 쪼기 위해 퍼덕거리며 몰려다니던 서울 변방의 작은 한옥에서 여러 가구들과 함께 살았던 기억이 있지만 그건 정말 내 평생을 놓고 볼 때 한 조각에도 못 미치는 경험일 뿐이다.


그 짧은 기억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아스팔트 위에서 보냈고 그런 환경에서 만들어진 대도시 정서는 나의 아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공을 위해 악착같이 상경하여 서울에서 자리 잡은 부모님 덕분(탓)에 어쩌다보니 서울 사람이 된 경우지만 어쨌든 나는 대도시를 벗어나 살아본 경험도 없고 그럴 생각도 해보지 않은 전형적인 서울촌놈이다.


그래서인지 도시는 나에게 가장 적합한 공간이다. 일정하게 구획된 공간, 사생활이 보장되는 콘크리트 벽 속에서 나는 평온함을 느낀다. 단조로운 공간 안에서의 활동이 지겨울 때에도 내가 찾는 대체 공간들은 사적 자유가 보장되는 익명의 공간들이 대부분이다.  


극장이나 도서관, 카페, 서점, 미술관, 주점, 심지어 운동을 할 때도 야외보다는 기구들이 갖추어진 공간을 선호한다. 가장 밀도가 높은 곳에서 살아가면서도 가장 개인적인 공간을 추구하고 그런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그런데 이러한 이율배반은 단지 나라는 개인의 선호를 넘어 도시의 기능과 구조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도시라는 공간은 기획된 거대한 인공의 결과물인 것 같지만 사실 생명을 가진 유기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졌고 또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도시라고 하면 엄청나게 높은 빌딩들이 답답한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내는 비인간적이고 인공적인 공간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건 근대적 도시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관념일 뿐이다.


도시의 형성은 생명체의 진화과정과 비슷하다. 기술적 토대 위에 문화적 생태계가 얹히면서 만들어지는 과정도 그렇고 상하수도 시스템과 통신설비, 복잡다단한 도로망과 같은 물적 설비는 세포의 분화와 순환계나 신경계를 닮았다.


홍익대학교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을유문화사, 2015)>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역사와 도시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사회 문화학적 기능을 평범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다.


저자는 대표적인 고대도시 로마와 근대 계획도시의 시발이 된 파리,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 유입인구를 위해 현대적 대도시로 거듭난 런던, 20세기 이후 거대도시의 원형이 된 뉴욕을 예로 들면서 도시의 탄생과 변화를 설명한다.


아울러 도시의 역사적 발전과정 뿐 아니라 도시의 다양한 기능을 새로운 시각으로 짚어준다. 특히 근대적 공간을 뒤늦게 만들기 시작한 우리 도시의 한계와 가능성, 도시의 구조와 권력에 대한 작가의 통찰은 단순한 공간의 분할과 창조라는 기능적 건축론을 넘어 사람과 소통을 위한 인문적 공간설계의 이유와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북촌이나 경리단길, 홍대 피카소 거리와 같이 다양한 경험과 이벤트가 연결되는 거리문화가 새롭게 조망되는 시대에 한번쯤 읽어둘만한 건축인문학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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