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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ug 29. 2016

아무것도 아닌 자의 삶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 중에서도 가장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서 내가 그중 최고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건 나를 포함하여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가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론을 장식하기도 하지만 나와 긴밀한 친분관계가 있는 건 아니어서 그닥 신경이 쓰이진 않는다.

나는 스물 세 살 뒤늦게 군입대를 해 논산훈련소 연병장 진흙 밭을 박박 기면서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건 마땅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였거나 모멸적인 자기 고백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그 후로도 몇 년간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억울했던 것 같다. (사실 억울할 일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보통 인생의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까지 베일에 가려졌던 비밀과 마주하면서 그제서야 진실에 눈을 뜨게 된 심봉사인듯 놀라워 하지만 사실 그들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 몰랐다면 지능이 떨어지거나 지독히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겠지.

사십년쯤 살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아득바득 살아봐야 공중에 떠 있는 몇 평 공간을 내 집이랍시고 점유하는 삶인 것을. 바득바득 우겨봐야 스카이 서성한 중경외시 아니면 지잡대, 조막만한 한반도를 뚝 잘라 낸, 보이지도 않는 땅덩어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삶인 것을.

악을 쓰고, 기를 써도, 젖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도, 눈에 핏발이 서도록 버텨봐도, 내 눈에 흙이 들어올 때까지 절대 안 된다고 아무리 우겨 봐도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그만 인정하자. 명함에 새겨진 당신의 직함이 정말 당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부터 그만두자. 인생을 평균 80년으로 잡았을 때 아마도 그 명함의 수식어가 온전한 당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2~3년에서 길어봐야 30년에 불과하다.

살아있을 때 온전히 당신을 수식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신의 이름 석자 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만 가지 가치와 의미를 다 담을 수 없어 고작 한자 두자에 구겨 넣은 당신의 이름만이 보잘 것 없는 당신의 전부라는 사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당신의 이름 앞에 무언가를 적어 넣을 생각을 하지 말고 당신의 이름 뒤에 남겨질 것들이 무엇일까 생각하자. (우리의 인생은 자기 이름을 주어로 서술해가야하는 긴 문장일테니), 그게 아무것도 아닌 나나 당신같은 사람들이 그나마 이 세상을 위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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