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不ON 문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너 Oct 03. 2016

영화 '아수라' 후기

무너뜨릴 수 없는 탐욕의 공간

온통 피칠갑이다. 살점이 튀고 뼈가 으스러진다. 틈만 나면 서로가 서로의 숨통을 조이고 시퍼런 칼날을 옆구리에 들이민다. 두시간 동안 고문을 당하다가 겨우 풀려난 것 같은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근래 본 영화중에 가장 더럽고 가장 잔인했다.
.

선과악의 대결구도가 아니라는 점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 대신에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역겹고 불쾌한 장면들을 견뎌내야 한다. 누구는 헬조선의 현실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이건 좀 너무 멀리 나간거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의도는 모르겠지만 김성수 감독이 이 악물고 끝까지 밀어부치는 바람에 영화는 잔인해졌고 그걸 지켜보던 나는 적잖이 불쾌했다.     
.

개미굴 같이 복잡한 재개발지구 뒷골목이 영화의 배경이다. 수 많은 차악과 악의 대결구도가 그 공간 속에 켜켜이 쌓여있다. 물론 그 모든 대결은 돈과 권력을 향한 인간들의 탐욕때문에 벌어진다. 우리에게 '개발'이라는 말이 '근대화'와 '폭력'이라는 상반된 개념으로 코드화되어 있듯 영화속 안남시 역시 '천당같은 분당'을 건설하겠다는 박성배시장(황정민 분)의 무절제한 탐욕으로 인해 아수라가 되어버린다.
.

이 중의적 공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이해와 타산에 맞게 행동한다. 악을 추종하는 그릇된 충성심의 본질도 결국은 아수라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그들은 개처럼 이용당하고 버려질 무렵에서야 비로소 자기가 그저 더 큰 탐욕을 위해 쓰여진 소모품이었다는 진실과 마주한다. 누구든 그걸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게 이해타산에 밝은 합리적인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질서가 잡혀갈 법도 하지만 어디 아수라의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 그 세상은 가장 비열하고 가장 극악한 자의 탐욕에 의해 구성될 뿐이다.
.

이 역겨운 이야기 속에서 감독은 두가지 사실을 말하려 하는 듯 보였다. 하나는 온당치 못한 권력과 그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부조리한 구조가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합리적 제도보다 견고하다는 것. 또 하나는 그 견고한 구조를 움직이는 동력은 바로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이다.
.

인간의 탐욕은 전이되고 확산되며 부딪히고 또 깨진다. 박성배의 탐욕은 한도경 형사(정우성 분)를 거쳐 순진하기만 했던 문선모(주지훈 분)의 탐욕으로 이어지고 출세라는 김차인 검사(곽도원 분)의 세속적 탐욕과 부딪힌다. 복잡하고 소모적인 구조지만 이 극악한 구조를 해체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종말(모든 당장인물이 피칠갑을 한 엔딩 시퀀스를 보라) 뿐이다.
.

자 이제 영화가 끝났으니 아수라도 끝이 난걸까. 정말 칼을 내려놔도 괜찮을까. 누군가 골목 어귀에서 뒤통수를 때리진 않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내내 더러운 건 내가 현실의 아수라를 일상에서 경험해봤기 때문 아닐까.  
.

어둡고 질척질척한 시장통에 어귀에서 들려오는 젖은 발자국 소리와 어금니 사이로 터져나오는 신음소리, 묵직한 둔기와 인간의 육체가 부딪힐때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 저질스러운 욕지거리, 야비한 웃음소리, 어두운 공간에서 들었던 그 많은 소리들이 따라와 괴로운 밤이다. 오랜만에 본 영화가 이지경이다. 괜히 봤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최악의 하루>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