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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Nov 08. 2016

영화 <가려진 시간> 후기

대립되는 두 공간을 이어주는 믿음

영화 <가려진 시간>은 시간을 거스르는 상상의 존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시간'보다는  '공간'에 주목해야 할 영화다. 이 영화에서 시간은 (주인공들이 겪는 극적인 이별과 재회와 같은) 스토리의 전개에 기여하는 구성상의 설정이거나 감동 포인트일 뿐이다. 반면 공간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사회상들을 반영하는 현실의 은유다.


영화 속 공간은 '시간이 흐르는 공간'과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으로 대립되며 '신화적 공간'과 '사회적 공간'으로, 혹은 '믿음의 공간'과 '불신의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보육원에 위탁된 성민(이효제, 강동원 분)과 계부에게 맡겨진 수린(신은수 분)은 우연한 기회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이들은 둘만의 기호로 소통하고 마을과 학교에서 벗어나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공간적 유대감을 쌓는다. 사회에서 고립된 존재들에게 독립된 기호체계와 밀실의 유대감은 신화적 상상력을 이끌어내는데 적합한 모티브가 된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 불행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공간'(마을, 학교)에서 '신화적 공간'(오두막집, 동굴)으로 밀려난다. '사회적 공간'은 '불신의 공간'이다. 아이를 잃어버린 이웃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한다. 책임을 미루려하고 진실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반면 '신화적 공간'은 허구적이고 폐쇄적이지만 현실을 전복하고 재구성한다는 의미에서 '혁명적 공간'이자 '신뢰의 공간'이다.

두 주인공이 신뢰를 쌓아가는 공간으로 설정된 오두막집


그렇게 보면 발파현장 접근을 막기 위해 쳐놓은 울타리, 혹은 도균(수린의 계부, 김희원 분)이 자신의 딸을 보호하기 위해 망치질로 막아 둔 수린의 방은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불의한 현실을 강요하는 폭력의 상징이 된다. 그 현실적 금기를 깬 아이들만이 불신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 신화적 공간에 접근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 대립된 두개의 공간은 영화 전체에 흐르는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영화의 중반부에 나오는 성민과 도균(수린의 계부, 김희원 분)과의 격투씬은 '믿음'과 '의심'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상징적 장면으로 이해할수 있다.

 

이렇듯 성민과 수린은 공간적 유대감을 기초로 사랑을 쌓아가지만, 두 사람 사이에도 차이는 존재한다. 바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에 대한 경험이 그것이다. 수린은 성민과 달리 이 특별한 공간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린은 조건없이 성민을 믿고 기다린다. 이 '믿음'만이 대립된 두 공간과 두 사람을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가 된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지각하지 않은 세상(혹은 존재)에 대한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는 종교적 메세지가 연상되고 자연스럽게 상반기 히트작 <곡성>이 떠오르지만 두 영화는 전혀 다른 결론을 제시한다. <곡성>이 불신의 결과로 인한 파괴적 종말을 그려냈다면 <가려진 시간>은  잔잔한 감동과 사랑의 완성으로 결론을 맻는다.   

 

신은수. 장래가 기대되는 배우다.


감독은 불신과 증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순수한 믿음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성민과 여중생 수린이 손을 맞잡은 갑판씬이 감동적인 건 사랑을 위해 긴 시간을 견뎌낸 성민과 대립되는 공간을 넘어서기 위한 두 사람의 믿음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 아닐까.


강동원의 동안을 이렇게 잘 쓸수 있는 영화는 앞으로도 별로 없을 것 같다. 서른 중반의 남성얼굴에서 십대와 이십대에서나 느낄 수 있는 설익은 남자아이의 느낌이 난다.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되었다는 수린역의 신은수의 연기도 자연스럽다. 스크린에 잘 맞는 얼굴이고 순수한 믿음을 쫒아 현실과 갈등하는 배역의 느낌도 잘 살린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우리 영화에서 아직 보지 못했던 장면이라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뚜렷한 수작이 보이지 않는 가을 꽤 많은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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