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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Dec 10. 2016

쿨하거나 핫하거나 뜨뜻미지근하거나

무너의 대중문화 읽기

'핫'이슈니 '핫'아이템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 한 건 H.O.T라는 아이돌이 깨방정을 떨던 90년대 중후반쯤 되려나.

살얼음판 같았던 80년대의 냉전구도가 무너진 자리에서 지식인들이 늘어놓던 후일담과 눈팅후기에 지루해했던 청춘들은 '우리'를 벗어나 '나'에게 유독 집중하기 시작했다. "난 알아요"(서태지), "나는 멈추지 않는다"(잼), "나는 문제없어"(황규영), "와 같은 노래들이 청춘의 마음을 들끓게 했고 "굴레를 벗어나"(듀스), "교실이데아"(서태지), "바꿔"(이정현)과 같은 노래들이 허위와 가식에 쩌든 주류문화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햇볕정책'이니 '핫라인'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 때도 딱 이쯤이었던 것 같다. 마치 냉탕에서 온탕으로 건너갈 때의 느낌이었달까. 물론 휴거니 Y2K같은 세기말적 공포가 확산되고 IMF와 같은 현실의 공포가 어깨를 짓누르던 시대이기도 했지만 무당 옷을 입고 무대를 펄펄 뛰어다니며 "바꿔 바꿔 모든걸 다바꿔"라고 외치던 청년들이 있어 그나마 듬직했던 시기였다.


 '엽기'라는 문화코드가 네트워크 초기 하위문화의 주류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고 7-80년대 진지일색이던 청년문화에 염증을 느낀 세대답게 뭐를 해도 도를 지나칠 만큼 들떠 보였다.


누구 못지않게 덜 생긴 싸이가 엽기컨셉으로 인기를 얻으며 등장했고, 싸이만큼 똘끼충만한 청년들이 붉은 옷을 맞춰입고 광장을 가득메운 채 '대한민국~'을 연호해도 집단주의의 과잉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었던 뭐 그런 시대였다.

그야말로 '핫'한 시대였달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쿨'한 것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촛불의 열기를 식혀야했기 때문이었을까. '쿨다운' 하기 위해 청년들은 냉소적으로 변해갔다.


질척거리거나 미련을 보이는 건 고리타분한 것이었다. '쿨하지 못한'건 '미안'한 일이었다. 마침 한여름 최고기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냉방용 전열기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설령 내가 미련을 버릴 수 없더라도 티를 낼수 없었다. '쿨'하지 못한건 시대에 뒤떨어지는 거니까. 우리는 가급적 멀리 떨어지려했고 엔간하면 등을 돌리려했으며 낯선 사람과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노오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서 청춘의 선택지는 '노오오오오오력'이거나 포기다. 뜨거운 마음으로 '나'에게 집중했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이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나'안에 갇힌다. '노오오력'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포기하면서도 '쿨'한 모습으로 포장되기 바라는 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자기방어랄까. 열정이니 희망이니 소중한 경험 따위의 말들이 갑자기 염증처럼 느껴지는 시대, 적응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가급적 타인과의 접촉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 이를테면, 계산대 앞에서 이렇게 외치는 식이다.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우리는 그러니까

십년이 넘는 세월

냉온탕을 두번쯤 오간 셈이다.


'핫'과 '쿨'은, 말하자면, 외부를 향한 내 몸과 마음의 상태다. 세상을 쉼없이 위치를 바꾸었고 눈치빠른 사람들은 말을 갈아타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온 몸의 숨구멍을 열었다가 닫곤 했던거다.


'핫'도 '쿨'도 심드렁해진 요즘,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겪어보니 개뿔도 아니었음을, '쿨'이나 '핫'이나 그저 말장난이었음을, 결국 변덕스러운 외부의 온도보다 중요한 건 제 안에 지켜온 체온이었음을, 내 안에 켜둔 촛불 하나였음을, 자신의 체온이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될 때도 시원한 격려의 박수가 될 때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핫하거나 쿨할, 혹은 핫하거나 쿨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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