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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Dec 15. 2016

궁전모텔과 궁전예식장에 대한 명상

무너의 문화읽기2

                                 

세상에서 지금까지 본 가장 경악스러운 풍경을 꼽자면 단연 청주 외곽 국도변에서 본 모텔이다. 외조모가 잠들어있는 공원묘지 입구라서 일년에 한번은 이 엽기적인 풍경을 보게된다.


이름하여 궁전모텔. 하얀 외벽에 빨간색 뾰족 첨탑을 대여섯개나 얹은 것이 탈 것이라곤 녹슨 메리고라운드 뿐인 망한 놀이동산을 연상케하는 외관이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농가와 논밭, 이런저런 식당과 야산, 벌판이 반복되는 국도변을 거쳐 중세 서양의 건축양식을 흉내낸 시멘트 구조물이 갑자기 나타날때의 당황스러움이란. 해부용 탁자 위에서 재봉틀과 우산이 우연히 만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면 한 마리 말이 갈기를 휘날리며 토마토위를 달리는 느낌이랄까.


경악스러운 풍경은 이뿐 아니다. 서울 도심에서도 궁전모텔과 유사한 외관의 예식장을 마주칠때가 있다. 요란한 간판이 어지럽게 뒤덮힌 근린상가 사이로 고딕과 바로크양식을 적당히 버무려 올린 예식장은 원뿔형 첨탑과 지중해풍의 색으로 치장한 국도변 모텔만큼이나 당황스럽다.


이 포스트모던한 풍경을 배경으로 수천 수만의 남녀가 평생고락을 함께하며 살겠다는 공공연한 거짓말을 찍어낸다. 수백년 전 다른 나라 귀족들을 코스프레하며 관계의 첫걸음을 내딛는 부부들이 평생 진실한 부부로 살아 갈수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어찌된게 중세유럽풍을 쫒는 이 궁색한 세계화의 취향은 수십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성이나 궁전을 컨셉으로 한 판타지 공간에서 턱시도와 드레스차림의 부부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중년 여성들, 줄서서 축의금 봉투를 낸 후 갈비탕 그릇에 얼굴을 파묻은 채 예식엔 관심조차 없는 하객들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정말 전세계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진귀한 장면이 아닐까.


모텔과 예식장은 대표적인 판타지 공간으로 비현실성이라는 특징을 공유한다. 결혼은 일상이지만 예식은 비일상적 행위다. 예식장이 판타지적 공간으로 가상화되는 이유는 결혼을 성공적 삶을 위해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제의로, 혹은 한차원 높은 삶의 완성을 위해 디뎌야 하는 단계로 생각하는 뿌리깊은 인식 때문이다. 절대 깨어져서는 안되는 성스런 결속이자 완고한 가족신화가 결혼을 일상에서 분리하고 이상화한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이라거나 이혼 경력을 부끄러워하는 풍토나 한부모 가정을 결손가정으로 부르는 문화들은 모두 신화화된 결혼제도의 폐해들이다. 결혼을 일상의 연속으로 여길수 있으면 그 구성이나 해체가 지극히 현실적이고 연속적이며 자유로워야 한다. 결혼을 제2의 삶이라고 칭송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제도에 편입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행위다. 


또 다른 판타지 공간으로 모텔은 더 기형적이다. 한국사회에서 모텔은 오로지 성행위를 위한 장소로 특화되어있는데 일회적이거나 공인되지 못한 커플을 위한 공간이라 그런지 어떤 공간보다 폐쇄적이고 퇴행적이다. 그 폐쇄성은 은밀한 개인의 결속을 일시적으로 심화키지만 외부와 교류가 불가능한 공간적 한계 때문에 관계를 파탄내기도 한다. 사회적 공인을 받지 못한 개인들이 뜬금없는 서구풍의 몽상적 안락으로 그 한계를 보상받으려할 뿐이다. 


본질적으로 한계가 명확한 욕망들이 현실의 바닥을 딛지 못하고 판타지 공간으로 부유한다. 모텔과 예식장의 디자인은 그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굴절된 욕망과  절망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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