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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an 22. 2017

영화 <더 킹(The King)>후기

고답한 질문, 경쾌한 대답


은퇴한 조폭이 있다. 자식만큼은 자신처럼 더러운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았던 이 사내는 피 튀기는 일상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애를 써왔다. 그 노력 덕분에 그는 꿈에 그리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자식과 아내를 멀리 해외로 유학 보낸다.


성공에 거의 다다른 것 같이 느껴지던 어느 날 이 기러기 조폭 앞으로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도착한다. 가족의 일상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다.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라면을 먹으며 영상을 보던 이 사내가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멀리 우아한 세계를 찾아 떠난 가족의 행복한 모습과 죽음의 문턱을 넘어 다녔던 자신의 힘겨웠던 과거가 한꺼번에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덩치는 산만한 조폭이 라면을 먹다가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이 장면은 수년이 지난 후에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영화 <우아한 세계> 이야기다. 조폭을 연기한 송강호의 연기력이 아니었으면 이 놀라운 장면이 탄생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한재림 감독이 던진 아래의 질문은 그 시대에 무척 유효했던 것 같다.


“더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당신, 당신의 삶은 정말 성공적인가요?”

영화 <우아한 세계(2006, 한재림)> 중 한 장면

한재림 감독의 신작 <더 킹>이 주말 극장가 1위를 달리고 있다. 영화 <더 킹>은 조폭보다 더 추악하고 더 비열한 검사들의 이야기다. <우아한 세계>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조폭 이야기를 통해 결코 우아해질 수 없는 평범한 생활인의 세계를 그렸다면 <더 킹>은 권력만을 좆는 추악한 검사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권력자(king)는 누구인가’라는 다소 고답한 질문을 던진다. (박태수의 마지막 대사는 이 영화 혹시 선거관리위원회 공익광고로 만들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왕(권력자)이 누구인지 묻기 위해 영화는 검사라는 공직자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우리나라에서 선출된 권력보다 더 오래, 더 강력한 권력을 누리는 자는 누가 뭐래도 검사다.


공익의 대변인이라는 이들은 공적 이익보다는 승진 따위의 사사로운 이해를 위해 권력을 휘두른다. 강자에 줄을 서기 위해 숨죽여 눈치를 보고 은밀히 정치적 사건을 기획하고 때가 됐다 싶으면 묵혀두었던 사건을 꺼내 적들을 제거한다. 영화의 한 축을 맡은 검사장 한강식(정우성 분)의 우아한 식사장면이 모두 칼질(스테이크)인 것은 세련된 정장안에 감추어진 그들의 동물적 욕망을 상징한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어둠의 왕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관객들은 뉴스에서 익히 봐왔던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을 영화에서 발견할 때마다 그 기시감에 웃고 분노한다.


개발시대 너무나 많이 보아왔던 야망 가득한 흙수저의 성공스토리를 가장 밑바닥에 깔고 80년대 이후 격변의 한국 근대사를 그 위에 살짝 덮고 우정과 배신, 복수와 응징의 스토리를 토핑하여 냈다. 조인성과 정우성이 빚어내는 CF화면 같이 미끈한 영상미는 덤으로 딸려 나온 콜라 같다. 살짝 살짝 느와르 느낌도 나지만 전체적으로는 코메디다. <내부자들>보다 무게감은 덜하다. 전작 <우아한 세계>엔 미치지 못하지만 오락영화론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언급하고 싶진 않았지만 중간중간 실소할 만큼 유치한 몇몇 장면들은 흠.


뱀발 : 영화속 주인공 박태수(조인성)은 서울대 법학과 85학번, 사법시험 33회 합격으로 나온다. 실제 사시 33회 동기들의 면면을 보면 더 재미있을 듯. 현역 정치인으로는 박범계, 조윤선이 있고, 윤석렬 검사, 강용석 변호사, 이정렬 전 부장판사 등이 이 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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