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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r 18. 2017

영화 '프리즌'(나현, 2017) 후기

사유화된 공공의 영토 회복기

“감옥 안에서 감옥 밖의 세상을 움직이는 거친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요약하면 이 작품으로 데뷔한 나현 감독의 의도에 넘어가는 걸까. 영화 <프리즌>은 감옥을 배경으로 한 기존의 수많은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설정으로 눈길을 끈다.


수감된 죄수들은 폭력의 위계에 길들여져 있지만 탈옥하려하기 보다 체제에 안주하려 한다. 교도소는 단 한사람, 모범수 익호(한석규 분)를 정점으로 한 위계적 구조로 재구성되어 있다. 익호는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적절히 배분하고 이에 순응하지 않는 자를 잔혹하게 응징하는 것으로 권력을 강화한다. 그는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감옥으로 왔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18년째 같은 감옥에서 조폭 출신 수감자들 위에 군림했을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익호의 권력은 수감자들을 구속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그는 국가권력을 폭력으로 대체하고 교도소를 사유화한다. 원할 때 언제든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수하들까지 교도소 담장 밖으로 외출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울타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 교도소는 그가 담장 밖에서 벌이는 범죄를 계획하거나 벌여놓은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는데 적합한 알리바이의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악마와 같은 범죄자에게 사유화된 국가의 영토가 영화의 배경이 된다면 그 권력에 빌붙어 사적 이익을 챙기는 공무원. 폭력에 굴복하고 그 폭력을 내면화해가는 죄수들. 그리고 이 거대한 범죄조직을 밝혀내기 위해 수감자로 위장 잠입한 꼴통경찰 송유건 경위(김래원 분)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이렇게 캐릭터들을 나열하고 보면 익호의 통치력이 미치는 교도소는 마치 부정한 세력들에게 주권을 찬탈당한 국가의 상징인 것 같이 느껴진다. (실제로 교도소장은 부정한 권력자에게 사살 당한다.) 부정한 권력은 주권자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공무원들을 하루아침에 부역자로 만들어버린다. 진급을 하고 뒷돈을 챙기는 대신 익호의 폭력을 용인하고 때론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폭력에 길들여진 죄수들 역시 폭력으로 맞서보기도 하지만 결국 죽임을 당하고 실패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감시탑에서의 결투장면은 이 영화가 폭력으로 사유화된 공적 영역(교도소, 국가)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과정인지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하필 그 결투가 이루어진 장소가 감시탑인 이유도, 수많은 죄수들이 감시탑위에서 벌어지는 결투장면을 지켜보는 장면도 파놉티콘으로 상징되는 권력의 부정한 속성과 폭력에 길들여진 군중의 무기력함을 의미하려했던 것 아닐까.
 

감시탑 위의 두 남자는 야생을 지배하는 두 마리의 육식 동물 같이 느껴졌다.


전반적으로 잔혹한 장면이 많다. 옆자리에 앉았던 젊은 여성이 움찔움찔하며 고개를 들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한석규는 그가 지금껏 보여준 캐릭터들의 범주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었다. 말투는 느리고 눈빛은 잔인했다. 피묻은 입으로 먹이를 물고 냉정히 돌아서는 육식동물의 눈빛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김래원은 캐릭터의 두 상반된 모습을 적절하게 나누어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전반부의 김래원과 후반부의 김래원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안방극장을 벗어나 진짜 스크린에 어울리는 배우였구나 느끼게 한 첫 번째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

잔혹한 장면을 싫어하는 분들은 보지 않는 것이 좋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분들 역시 뒷말이 많을 영화다. 그러나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꽤 오래 회자될 영화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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