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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n 18. 2017

영화 <중독노래방>후기

남근사회에서 열린사회로

실재하지 않을 것 같은 가상의 공간에 네 명의 중독자들이 모여 가족을 이룬다. 공간은 60년대 지었을 것 같은 극장 건물 지하 노래방이고 이 공간에 숨어든 네 명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숨긴채 바깥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그 탓인지 영화의 장소적 배경은 지하 노래방 한 곳에 한정되지만 독특한 미장센이 관객을 끌어들이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스릴러 판타지 코믹과 같이 여러 장르을 오가는 감각적인 영상이 초반부 몰입도를 높인다.

노래방 주인은 포르노에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는 관계부적응자다. 그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포르노의 교성에 집착하지만 상처입은 이웃과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하다. 관계 부적응자는 사장만이 아니다. 노래방에서 추리닝 한벌로 숙식을 하는 도우미 '하숙'은 팔에 자살흔을 몇개나 가진 상처많은 여성이다. 오로지 게임에만 집착하는 하숙은 노래방 손님들에게 변태적인 서비스를 할만큼 자아가 붕괴된 상태다.

포르노와 게임이라는 가상세계에 중독된 이 두 사람에게 또 다른 가족이 생긴다. 하나는 프로 도우미를 자처하는 '나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노래방 빈방에 숨어 한달을 살다 들킨 '점박이'다. 나주는 이 기괴한 가족 중에 유일하게 바깥 세상과 노래방이라는 판타지 공간을 이어주는 외향적 존재지만 그녀 역시 돈에 중독되어있긴 마찬가지다. 놀랍도록 엽기적인 얼굴과 차림을 한 점박이는 고통스런 가족사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자폐증세까지 보이는 장애인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고로 인한 가족의 죽음, 아버지나 남편의 폭력과 같이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고통의 기억과 싸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신적 결핍과 심리적 상흔을 덮기 위해 판타지(포르노, 게임, 돈, 도벽)에 집착하지만 판타지는 그들의 고립을 심화시킬 뿐 그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지 않는다. (나주가 죽어갈 때 나머지 세명은 중독된 가상세계에 몰입된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이들의 결핍과 상처는 중독이라는 심리적 유배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다시 가족 안에서 치유된다. 전통적 개념의 가족으로부터 받은 고통을 또 다른 대안가족으로 치유받는 셈이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해서 하숙에게 변태적인 요구를 하던 인사동 골동품가게 사장은 거대한 남성성기모형을 꺼내놓고 '만악의 근원이 남성의 성기'라는 말을 한다. 전통적 가족은 이 남근으로부터 시작된 번식의 결과물이고 그 잠재된 폭력성이 전통사회를 지배하던 이데올로기였다. 영화에 나오는 남성들 대부분이 폭력적이고 비열하게 묘사되는건 그 폭력의 질서가 가족에서 시작하여 사회 전체로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강간당하는 하숙의 동영상을 돌려보고 낙인찍는 남성들에게 유일하게 물리적으로 저항하는 나주가 그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감독은 이 전통적 가족이라는 허상에 중독된 우리사회를 비판하면서 남근이 개입되지 않은 더 느슨하고 더 유연한 대안가족을 처방하는 것 아닐까. 대안가족이라고 표현해보았지만 그건 소수자들의 연대체일수도 있고 열린사회의 상징일수도 있다. 어쨌든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가족(남근사회) 안에서 상처받은 자들이 서로 보듬고 기댈 수 있는 또 다른 치유의 공간을 제시하려는 감독의 의도를 읽었다. 폐쇄적인 가상 공간(중독 노래방)이 열린 공간(가족 노래방)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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