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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y 29. 2018

도심 속 낯선 곳으로의 여행

<‘보타니카: 보라 코끼리’> 전시회 관람 후기

전시를 언어소통의 과정으로 비유하자면, 발화자와 청자가 동일한 언어체계를 공유해야 하고 은유와 상징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을 공유해야 한다. 그게 소통의 전제조건이다. 전시도 마찬가지다. 보여주려 했던 것(의미)와 보는 것(해석) 사이의 간극은 불가피하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전시 설명자료나 도슨트다. 일종의 통역가라고 할까.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기획자의 생각을 관람자가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어차피 드러내는 자의 욕망과 그걸 지켜보는 자의 욕망은 서로 다른 지점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흥미로운 전시는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하는 전시가 아니라 감각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색다른 전시를 다녀왔다. 보는 것에 집중하는 전시가 아니라 보고, 듣고, 향기를 맡고, 촉감을 느끼는 전시다. <‘보타니카: 보라 코끼리’> 코끼리 전시회냐고 물어볼수 있겠지만, 코끼리를 볼수는 없다. 대신 축축한 이끼, 까끌하지만 푹신푹신한 모래와 나무껍질, 강렬한 조명광, 환상적인 안개를 느낄 수 있다. 수백가지의, 식물과 꽃이 뿜어내는 향과 색이, 페르시아 융단처럼 사면을 수놓는다. 곳곳에 뉴미디어와 얼굴 조각이 배치되어 있고 바이올린과 젬베 연주가 이어진다. 관람객은 ‘일상(日象)’ ‘회상(回象)’ ‘허상(虛象)’ ‘심상(心象)’ ‘자상(紫象)’으로 구획된 다섯개의 낯선 공간을 통과하면서 공감각적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공간의 명칭이 흔히 사용하는 한자와 다르다. 전부 코끼리 상(象)자를 박아 넣었다. 의도된 함의를 읽어야 한다. 믿거나 말거나, 코끼리는 생의 매 순간을 기억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어떤 의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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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무의식 깊은 곳에는 자연의 풍요로움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멈추고 머물러야 하지요. 저희가 추구한 것은 무의식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시간과 공간인데, 그곳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현실에는 없는, 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있는 보라색 코끼리입니다. 코끼리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찰라의 순간 사라진 과거를 되찾는 역할이죠. 그래서 저희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이곳에서 자연을 느끼며 당신만의 보라 코끼리를 찾아보시라고.” (기사 '내 무의식 안에 비밀의 화원이 있다'중 발췌 /중앙/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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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소개된 기획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전시 타이틀이 왜 코끼리인지 생각하며 보는 관람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일상에서 절대 마주할 수 없는 환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드는 청춘남녀가 많다. 서울숲 한화갤러리아 포레 지하에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관람하고 서울숲을 산책하는 것도 썩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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