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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y 29. 2018

사랑하기 두려웠던 날의 기억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개가 짖었고 바람소리가 얼핏 들린것 같았지만 꿈쩍도 하기 싫었다. 몇 번인가 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할수 없이 나가보니 골목길 가로등 아래 핀조명을 받은 연극 배우처럼, 그 아이가 서 있었다. 뭐야? 이시간에. 그 아이는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선 잠에서 깬 탓에 나는 슬쩍 짜증이 났다. 술을 마셨고 어쩌다 발길 닿는대로 걸었고 그게 우연히 우리집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할말이 있어 찾아왔다는 후배에게 그게 할 소리냐 싶었지만 이미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었다. 바르르 떨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일순간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건 그 녀석이 뒤돌아 간 후에 내가 포착한 순간일 뿐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는 녀석을 쫒아가볼까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집으로 들어와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몇 번쯤 마주쳤지만 서로 아는 척을 하진 않았다.

퇴근 길, 집앞 골목에서 심각한 표정을 나누는 스물 네댓쯤 되어보이는 청춘남녀를 보며 옅은 라일락 향기가 봄밤을 가득 채우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거라. 얘들아.

#사랑하기두려웠던날의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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