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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y 29. 2018

작가라는 존재에 대해


무언가를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작가'라고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전업작가'라고 하면 쓰는 일 외에는 어떤 직업도 갖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작가'와 '전업작가'라는 말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는 꽤 멀다. 전업작가는 글만 써도 먹고 살수 있는, 그러니까 생존을 가능하게 할 만큼의, 재화와 교환할 수 있는 상품성 있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제한된다. 낮은포복으로 철망을 통과하는 느낌이다.  


이렇게 별것도 아닌 말뜻을 늘어놓는 이유는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나는 전업작가는 고사하고 작가도 뭣도 아니지만 20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세월 글을 써왔다. 그래, 어떤 글을 썼는지 한번 보자고 하면 딱히 내놓을 만한 글을 쓴 건 아니다. (간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받는 토끼의 느낌이 그럴까.)


그만큼 썼으면 그럴듯한 수필집이라도 한권 만들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시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어쨌거나 나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썼다. 간간이 일기를 쓰고 있고 어릴적엔 습작이랍시고 되지도 않는 시나 단편소설을 썼고, 직업을 가진 후엔 주로 보고서를 썼다. 보도자료와 말씀자료도 썼다. 주변 사람들이 부탁을 받아 고소장이나 내용증명 같이 실용적인 글을 써주기도 하고 기고문을 다듬어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내 글이 활자화되는 재미도 있었다. 무언가 쓰는 일 자체가 재미있었다. 온라인 활동을 시작하고 부터는 주로 칼럼형식의 글을 썼고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이 생긴 후로는 이동하는 시간을 십분 활용해 가리지 않고 잡글을 써댔다.


며칠전 브런치라는 사이트에서 '작가가 되신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작가라니, 별 것 아니지만 듣기 싫진 않았다. 브런치라는 사이트는 글쓰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부정기적으로 자신의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둔 일종의 플랫폼이다. 세상엔 참 다양한 분야게 전문성과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구나. 나는 브런치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게중엔 그냥 습관처럼 글을 쓰는 사람도 보였다. 나와 비슷한 욕망을 가진, 그러니까 일종의 노출증 환자랄까.


"글을 왜 쓰냐? 니가 작가냐?"


친구가 물었다.


"작가만 글쓰냐?"


나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작가만, 아니 전업작가만 글을 쓸 수 있다면 노래는 가수만 해야 하고 그림은 화가만 그려야 하냐?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젖 아래로 지긋이 눌러야 했다. 그 날은 친구가 소고기를 사는 흔치 않은 날이었다. 2차로 노래방엘 가자는 친구놈에게 '니가 가수냐 짜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소고기 값이 꽤 나온 것도 이유였지만 어차피 글쓰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설명해준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안다.


'작가'는 쓰는 사람이다. 쓰고 드러내는 사람이다. '전업작가'는 쓰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이지만 '작가'는 딱히 그 경지에 오를 필요는 없다. 책을 내고 내지 않고를 떠나 빈 종이를 채워나가며 즐거울 줄 아는 사람이면 족하다. 꼭 인쇄물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는 매체는 널렸다. 쓰고 정리하고 또 다른 글을 구상하는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 유명한 전업작가들처럼 타고난 재주가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게 없으면 어떤가. 나중에 죽기 전에 그나마 봐줄만한 내 글을 추려 책 한권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유언대신 남기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그 책의 첫머리엔 꼭 이렇게 적고 싶다.


"죽기직전에 낸 한권 뿐이지만, 실은 오래전 부터 작가였던 사람이 남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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