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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y 29. 2018

사물의 비명을 듣는 시간

어중간하게 잠에서 깬 시간이 자정 즈음이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서 잠깐 쉴 요량으로 소파에 기댔다가 까무룩 잠이 든게지. 차라리 동이 틀무렵까지 깨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나에게 그런 숙면의 행운이 따를리 없다. 고작 세시간 남짓 의도치 않은 잠을 잔 대가로 밤을 새야할지도 모른다.


이제 막 서울역을 출발한 부산행 케이티엑스가 느릿하게 레일위를 미끄러지듯 시계는 고작 한시 십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하필 커피가 당기는 건 또 무언가. 커피라면 이골이 날 법한 노련한 바리스타처럼 최대한 묽게 커피를 내리고, 기왕 이렇게 된거 다시 잠이 올때까지 공상을 하거나 글이나 끄적거려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습관처럼 책상앞에 앉았다.


책상은 멍때리거나 공상을 하거나 해찰떠는 인간을 위해 발명된 도구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오를리가 없지않은가.


모두가 잠들어, 심지어 페이스북 알림창 붉은 숫자표시조차 잠잠한 새벽 시간이 되니 마구잡이 상념과 공상이 밀려들어 숨이 가쁠 지경이다.


더 신기한 건 모든 사물들이 이 시간만 되면 새삼스럽게 저마다 꾹꾹 눌러왔던 소리를 낸다는 사실이다.

시계바늘은 레일을 오르는 롤러코스터처럼 째깍거리고 붙밖이장의 앙다문 문짝은 지난 세월 참아왔던 불평을 쏟아내며 삐걱거린다. 주방쪽에서는 중저음의 냉장고 엔진소리가 무겁게 깔리고 거꾸로 타오르며 헉헉거리는 보일러가 그 위에 화음을 얹는다.


새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수 있겠지만, 사물들은 저마다 할 말을 참고있다. 인간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난 모든 사물은 원래 자연 그대로의 속성을 회복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몸부림을 친다고 나는 믿는다.

사물의 소리에 민감한 나는 대책없이 밀려드는 회상과 공상으로 과거와 현재를 바삐 오가다가도 새벽의 적막함을 깨는 그들의 비명에 이따금씩 정신을 차린다.


이번엔 침대다. 아무도 없는 침대가 삐걱거리는 건 괴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침대도 꽤 오래 참아왔다고, 이제 한마디 정도 할때도 되지 않았냐고 생각하기로 한다.


따지고 보면 나의 회상과 공상, 원형을 찾아가는 사물의 비명은 그 맥락이 다르지 않다.


미련이 남는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자꾸 돌아가는 내 자의식이나 원형을 잃고 부동의 억울한 시간을 견뎌내는 사물들이나 다 짠하고 아프다.


아. 참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잠들지 못하는 이 새벽은 또 얼마나 아픈 시간들이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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