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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n 07. 2018

이태원, 걷다.

도시를 걸으며 멀어질 궁리를 하다.

한남대교를 건너자마자 버스에서 내렸다. 종로2가쯤에서 걷다가 북촌 어느 골목에서 대충 점심을 때우려고 했었다. 계획은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지 뭐. 버스를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사실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대강 어느 지점에서 시작해야 할지, 언제 끝을 내야할지 그런 건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관심사항은 오직 '걷는다'라는 동사였으니까. 나의 관심이 '동사'로 옮아갈 무렵이었고, 나는 지쳐있었다.


그럼 동사로 옮아가기 전엔?


돈, 명예, 권력 아니면 꿈, 희망, 사랑. 이런 속물같은 '명사'가 떠오를테지만, 나의 관심사를 굳이 말하자면, 그건 '형용사'에 가까웠던 것 아닐까. 이를테면, '행복한' '충만한'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 말이야. 그러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런거지. 굳게 닫힌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수트 안주머니 깊숙히 넣어둔 교통카드를 찾을 때의 느낌? 뒤에서 기다리는 승객들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사이 카드는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은 급해지고, 살아있다는게 궁색해지는 그런 기분 말야. 실체가 없어서 불안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발이 묶인 것 같은 일상.  


이제, 좀 걸어보자니까.


그러니까 나는 늘 무언가를 증명해보이려했고, 빈 주머니를 확인하며 좌절했던 것 같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라는 게 있다면, 나의 관점은 내 빈곳을 늘 응시하고 있던 셈이다. 허허로운 날들이었다.


발바닥이 지면을 끌어당기거나 혹은 지면이 내 발바닥을 밀어낼때 느껴지는 묵직함, 그건 지구가 나를 밀어내는 힘일까 아니면 내가 지구를 밀어내는 힘일까. 생각한다. 하필 왜 이태원이지. 그런 생각도 했다. 몇명의 이방인들이 제나라 말로 지껄이며 스치는 동안에도 나는 인파가 몰리지 않는 골목을 찾아 우직하게 걷고 또 걸었다. 허기를 느낄 틈도 없었다. 몇몇 바를 스쳐 지나가며 맥주 한모금이 간절했지만, 한번 걸음을 멈추면 다시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우사단로를 지나 해밀턴 호텔 앞에서 경리단길을 거쳐 골고다 언덕같은 해방촌 언덕을 올랐다. 다리가 아파 거리 한모퉁이 편의점에서 카스 맥주를 하나 까서 마셨다. 차가운 기포가 좁은 식도를 타고 밀려내려가는 느낌. 그 원초적 생리 반응이 세계에 대한 나의 유일한 소감이려니, 목구멍을 막고 거대해지는 포말을 우겨넣으며 생각했다. 대체, 나는 왜 걷게 된걸까.


oneinamillion.


단 한 사람이고 싶었던 걸까.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던 거야. 마흔 일곱의 생을 걸어오며 나는 고작 그 헛된 욕망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거지. 한남동 끝자락에 위치한 카페의 이름이 거미줄처럼 긴 여운으로 달려왔다. 걷어낼수 있다면 허우적거리는 한이 있더라도 걷어내야 할 터. 다시 무거운 걸음을 옮기며 되새긴다. 훗날 이 지루한 행로를 돌아볼 때 나 절대 부끄러워 하지 않으리. 해방촌 오거리를 지나 남영동을 향한 내리막길을 내달으며 씹고 또 씹는다. 조금씩 거리를 두어야겠군. 그건, 나를 위한 일이기도, 어쩌면 또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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