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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l 07. 2018

가난한 청춘들의 성장 스토리

영화 <'변산'(邊山), Sunset in My Hometown> 후기

영화 '변산'(邊山), Sunset in My Hometown 후기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는 청춘이 있다. 시골출신이라는 컴플렉스를 숨긴 채 아둥바둥 살아가는 래퍼 심뻑(학수)의 이야기다. 학수(박정민 분)는 불우한 성장기를 거쳤다. 아버지는 바람이 나 집을 나가고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지역에서 주먹깨나 휘두르던 건달 아버지는 아내의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부재'는 반항하는 청춘의 오랜 서사다. 학수는 고향을 떠나 서울 강북의 실핏줄 같은 골목으로 스며들었다. 편의점이나 주차알바를 하면서 래퍼로 성공하겠다는 꿈 하나로 버틴다. 그런 어느 날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제길, 태어나 한번도 기대본적 없는 아버지. 쓰러지거나 말거나 심뻑의 관심사는 아니다. 학수에게는 쇼미더 머니 본선이 눈 앞에 있다. 모진 맘으로 올라간 3라운드에서 주어진 키워드는 <어머니>. 마음이 심란해진 학수는 도저히 래핑을 이어갈 수 없다.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내려간 고향 변산. 변산(邊山)은 말 그대로 '변두리 산'이라는 의미다. 시골 출신이라는 컴플렉스를 가진 학수에게 고향 <변산>은 지우고 싶은 과거의 이름이자 주변부만 얼쩡대는 자신의 처지를 상징한다. 학수의 귀향은 그런의미에서 뜻하지 않은, 그래서 귀찮고 꺼림찍한 과거로의 회귀일 뿐이다.


고향에는 잊고 지냈던, 단절하고 싶었던 인연들이 즐비하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자신에게 연정을 가졌던 선미(김고은 분)도 조폭으로 변한 꼬봉 용대(고준 분)도 자신의 발목을 잡을 뿐이다. 학수는 하루라도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지만 고향의 모진 인연들과 이런저런 사건들로 얽혀버린다. 결국 학수는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던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며 비로소 저주했던 과거의 아픔에서 해방된다.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어물쩍 주변부만 맴돌던 학수의 랩은 너무나 가난해서 보여줄 것이라곤 노을 밖에 없는 자신의 고향(과거)를 받아들이며 한 단계 더 성숙해진다.

오랜만에 보는 휴먼 코메디 드라마다. 한때 사극으로 더 유명했던 이준익 감독은 '힙합'이라는, 그에게 다소 어울리지 않는 장르를 통해 우울하지만 기죽지 않는 청춘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다소 촌스럽고 한편으로는 정이 넘치는 우리식 공동체를 그려낸다. 지루할 틈 없이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간간히 관객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이준익식 유머 또한 발군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피아노 천재 자폐아 역할을 맡아 화려한 피아노 실력을 뽐낸 배우 박정민은 이번엔 프로 래퍼 못지 않은 실력을 보여준다. 배우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보여주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예 배우다. 도화지 같이 하얀 피부와 가는 눈매가 귀여운 김고은 역시 천연덕 스러운 전북 사투리를 구사하며 촌스럽고 사차원 같지만 속깊은 친구 선미 역할을 빈틈없이 보여준다. 이 두 배우가 없었다면 영화 <변산>은 이만한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흥행대박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따뜻한 휴먼 드라마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에게 꽤 오래 되자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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