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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l 14. 2018

다만, 끌려다니는 선이 아니길

<소설 '선의 법칙(편혜영 저)' 후기>

짝사랑을 하던 때의 이야기야. 상대는 같은 성당에 다니던 동급생이었어. 포니테일이라고 부르지 아마. 긴 머리를 고무줄로 묶은 모양 말야. 항상 포니테일을 하고 다니던 그녀를 성당에서 만났지. 사실 몇번 말도 못해본 사이였어. 


그녀는 아주 가끔씩만 길 건너편 버스 정거장에 모습을 드러냈지. 서로 방향이 다른 등굣길. 그렇게 이년을 보냈지만 아무일도 없었어. 용기가 없었던 거지. 대신 상상을 했어. 그녀의 찰랑찰랑한 머리에 끝없이 늘어나는 실을 연결하여 하루 종일의 궤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면, 그녀와 나의 동선은 얼마나 겹쳐질까. 과연 겹치기나 할까. 이를테면 그녀가 일주일 전 다녀간 서점에 내가 같은 자리에서 책을 고를수도 있고, 그녀가 들렀음직한 떡볶이집에.. 아 그만하자.  


보이진 않지만 모든 사람은 궤적을 남기지. 선은 멈추었다가 이어지고, 여러사람과 포개지고, 겹쳐지고, 한 곳에 머물다가도 다시 내달아. 일상의 궤적은 지루해보일지 몰라도 평생의 궤적은 세살 어린아이의 첫 드로잉처럼, 누에가 뽑아놓은 명주실처럼 아마도, 복잡하겠지. 한 사람의 궤적을 생각하면 참 신기한 점이 많아. 우연히 누군가와 한 점에서 만나 새로운 운명이 펼쳐지고, 어느 순간 인연이 끝나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멀어지는 선, 선, 선. 


편혜영의 장편소설 <선의 법칙>은 말 그대로 인생의 궤적에 관한 이야기야. 선이라는 건 얼핏 단순해보이지만 조금 더 다가가서 살펴보면 무수히 많은 점으로 연결되어 있는, 방향성을 가진 집합체잖아. 시작점이 있고 또 반드시 끝이 있는.  <선의 법칙>에 나오는 캐릭터들 역시 어쩌다보니 그렇게 살게 된 사람들이야. 때론 가난이, 궁핍한 처지가 사람을 이어주기도 하고, 때론 피붙이의 죽음으로 인연이 시작되기도 하잖아. 그 인연이라는 교차점에 정체되는 순간,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말야.  


그렇게 살아낸 삶이 동이 나면 누군가에 의해 추정되는 것이 우리 삶이라고. 언젠가 나 역시 원치 않는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그 종점이 오기 전에 내가 이어가는 무수히 많은 선들이 단지 무언가에 끌려다니던 흔적이 아니었으면 해. 소설 <선의 법칙>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안녕. 한때 내가 연연했던 모든 인연의 '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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