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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l 14. 2018

‘우리’라는 거짓말

‘우리’라는 말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물으신다면 주저없이 ‘네 남입니다.’ 라고 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집'이라고 해서 막상 갔더니 언제 집에 갈꺼냐고 물어보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럴줄 알았습니다. 나의 집과 너의 집이 유별하니 그냥 그건 '너희 집'일 뿐입니다. 소유를 무한대로 확장하는 건 반체제적 사고 아니겠습니까.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자면, 어차피 너와 나는 남일 뿐이니까요.

사랑하는 ‘우리’ 아무개라뇨. 누구와 누구의 아무개란 말입니까. 니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누구와 공유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심지어는 '우리 와이프'라는 말도 하더군요. 와이프라는 말도 별로지만 '우리 와이프'는 더 싫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님의 와이프는 제 취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나의 아무개. 너의 아무개. 혹은 그의 아무개가 맞습니다. 나의 아무개라는 말은 아무개가 맻고 있는 수 많은 관계 중에 나와의 관계만을 콕 찝어 표현한, 그러니까 나 이외의 관계를 배제하고 싶은 욕망의 솔직한 표현 아니겠습니까. 사랑은 그렇게 하는 겁니다. 삶도 그렇게 사는 겁니다.

우리 좀 솔직해집시다. '우리'라는 말에 대충 차이와 다양성을 우겨넣은 후 같은 색의 셔츠를 입고 광장으로 몰려나가 골이 들어가기만을 바라던 심뽀는 이미 2002년에 끝냈어야 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난로 하나 옆에 두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지천에 넘쳐나는데 '우리'가 가당키나 한 표현입니까. 그냥 너와 내가 있을 뿐입니다. 너와 나 사이에 온기가 감돌아 세상이 따듯해진다면 그건 그저 각자 서로의 마음을 조금 열었기 때문일겁니다. 우리라니요. 무슨 그런말씀을 하십니까.

우주가 수백만년 동안 유지되는 건 단지 행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기적인 힘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너와 나는 각자 존재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줄 뿐입니다. 제발 어울려, 혹은 하나되어 뭘 하는 것 처럼 농락하지 맙시다. 이제 ''우리'라는 거짓말은 그만 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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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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