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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l 14. 2018

과즙이 흐르는 스크린

<영화 '콜 미 바이유어 네임'(루카 구아다니노, 2017) 후기>

붉게 익은 살갗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태양 아래 그리스 조각을 닮은 남자들이 원색의 팬츠 한장만 입고 뛰어다닌다. 뜨거운 여름을 배경으로 이탈리아 북부 시골마을의 풍경이 펼쳐진다.

젊은 남성의 군살없는 상반신을 좋아하는 여성에게 맞춤한 영화라고 생각하며 중간을 넘겼다. 찰랑대거나 넘치고 흐르는 물소리가 어금니를 통해 전해지는 얼음의 저릿한 느낌처럼 귀를 자극한다. 선선한 바람에 서로 살을 부비는 나뭇잎과 짙은 녹음 아래 반라의 청춘들이 기타를 튕기거나 독서를 하고, 수영을 즐기고, 목울대를 꿀럭이며 살구주스를 넘기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쯤되면 코카콜라 광고의 한 장면쯤 되는 영화인가 생각하겠지만 영화는 첫사랑을 겪어내는 한 소년의 성장기다.

화면 가득한 감각적인 영상에 못지 않게 두 주연 남남(?)은 사랑에 눈뜨고 접근하고 빠져들고 만끽하는 과정 과정마다의 심리를 능청스럽게 묘사해나간다.

열 일곱살 엘리오역의 티모시 샬라메는 첫사랑에 빠진 소년의 감성을 깊은 눈과 항상 반쯤 벌어져있는 육감적인 입술로 연기해낸다. 약간은 바람둥이 같으면서도 진중하고 품위있는 목소리를 가진 올리버역의 아미 해머는 미국적인 매력남의 전형이다.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경험하지 못한 나에게 모든 애정씬이 편하지 않았지만 손가락으로 복숭아 씨앗을 파낼 때 들렸던 교성같은 음향처리와 엘리오의 신체위로 뚝뚝 흘러내리던 과즙은 그 어느 영화의 에로틱한 장면보다 더 자극적이었다.

마지막 벽난로 씬 역시 기억에 남는다. 티모시 샬라메가 보여준 표정연기도 깊은 울림을 준다.

사랑은 상대를 마음 깊은 곳에서 영원히 떠나보내야 할 때 가장 극적으로 충만해지는 것 아닐까. 배신감과 좌절감,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운명에 대한 열패감, 그럼에도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3분 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다. 그가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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