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不ON 문화

천국보다 낯선

영화 '천국보다 낯선'(짐 자무시, 1983) 후기

by 무너

천국은 추상적, 상징적 공간이다. 어느 누구도 경험해본 사람이 없는데다 종교적 관념 속에서나 존재하기 때문에 검증의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따라서 천국은 우리에게 극도로 비일상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천국보다도 낯선 공간이 있다면 그건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세상, 시공간적인 실재의 영역을 ‘현실’이라고 칭하고 그 현실이 되풀이되는 일상적 공간을 벗어나 낯선 세상으로 탈주하는 욕망을 꿈꾼다. 물론 그 일탈의 욕망이란 것은 당연히 현실로의 복귀를 전제로 한 욕망이다. 여행은 현실로의 복귀를 전제로 하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짐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은 결국 각자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세 청춘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천국보다 낯선>의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여행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공간은 끊임없이 이동하지만 카메라가 포착하는 장면들은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다. 이들이 거치는 뉴욕과 클리브랜드, 플로리다는 관념 속에서나 존재하는 공간일 뿐이다.


헝가리에서 온 이주민들에게 뉴욕은 황폐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이다. 주인공들은 낡은 아파트 안에서 무료한 일상을 묵묵히 견뎌낸다. 헝가리 말을 쓰지 않고 뉴욕의 뒷골목에서나 쓰는 슬랭을 구사하며 동화되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뉴욕에 동화될 수 없다. 카메라는 고정된 각도에서 이들의 무료함을 담담히 담아낸다. 아무것도 새로울 것이 없는 낯선 공간, ‘신세계’라는 제목은 극도의 반어적 표현이다.


이들이 ‘1년 후’(두 번째 이야기의 제목이다) 희망을 가지고 찾아간 클리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호수는 얼어붙어 있고 할 수 있는 것은 카드놀이로 시간을 때우고 영화를 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천국’이라고 표현된 세 번째 공간 플로리다 역시 마찬가지다. 돈이 없어 허름한 모텔방을 벗어날 수 없는 이들에게 허락된 자유는 썬그래스를 쓰고 여행자로 보이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은 여행을 하고 있어도 여행자가 아니라 그저 여행자로 보일 뿐이다.


결국 이들은 각자의 길을 택해 떠난다. 이들이 각자 돌아가기로 선택한 곳은 결국 이들이 출발했던 공간, 즉 삶의 터전인 일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이들은 동화되지 못하는 이질적 존재들이다. 천국보다 낯선 것은 결국 공간이 아니라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이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천국보다 낯선>은 1983년도에 만들어진 흑백 영화다. 첫 번째 에피소드 ‘신세계’가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나머지 두 개의 에피소드를 붙여 한 개의 영화가 되었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스스로 암살자가 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