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드니 빌뇌브)> 후기
몇 년 전이었나. 사람들은 저마다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의’를 제목으로 내세운 몇몇 출판물이 서점가를 휩쓸었고 그 아류에 아류도 안 될 사람들이 인문학을 팔아 떡고물을 주어먹을 때조차 세상엔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사건이 줄을 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정치사회적 이슈들에 경악하기도 했고 또 그러다가 크리스마스니 새해니 하면서 잠잠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어떤 것도 충격적이지 않았던 지난여름엔 난데없이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유령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도심을 활보했었다. 정의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진실이 휘발될 수 있음을, 그런 시절을 견디는 방법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비밀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진실 앞에 드리워진 거대한 장벽 앞에서 좌절하는 여성전사 케이트(에밀리 브런트)를 내세워 우리에게 정의와 진실에 대해 묻는다.
케이트는 각종 범죄진압 작전을 통해 두각을 드러내던 FBI요원이다. 그녀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두목을 검거하기 위해 결성된 태스크포스 팀에 합류한다. 그러나 그녀는 팀이 대체 어떤 것을 위해 움직이는지, 팀을 움직이는 합리적인 룰이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것처럼 느물거리는 팀장(조시 브롤린)은 목표만 알려줄 뿐, 그녀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의문투성이의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역시 그녀에겐 친절하지 않다. 그는 사람 목숨을 파리보다 쉽게 여기는 남자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고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사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었던 케이트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모인 합법적인 팀의 구성원들은 범죄조직만큼 잔혹하고 부도덕하다.
그러나 정의만이 진실에 다가서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걸, 진실한 자만이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면 그 악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때론 이 세상에서 정의를 세우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범죄조직으로부터 아내와 딸아이를 잃은 전직검사 알레한드로가 냉혈동물처럼 잔인하게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 사적 응보의 실현 아니었을까. 정의가 무엇인지, 거대한 진실이 무엇인지보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의 내러티브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니까. 이 영화의 시카리오들(‘암살자’라는 의미의 멕시코 말)처럼 말이다.